투데이e코노믹 = 우혜정 기자 | 질문을 정확히 던지면 '미국은 한국 경제가 잘되길 바랄까?'
질문이 단순해 보이지만 실은 두 개의 다른 질문이 섞여 있다. 하나는 "미국은 한국이 안보 파트너로서 든든하길 바라는가"이고, 다른 하나는 "미국은 한국 기업이 미국 기업과의 경쟁에서 이기길 바라는가"다. 첫 번째 답은 대체로 '그렇다'에 가깝고, 두 번째 답은 점점 '아니다'에 가까워지고 있다. 지금 한미 경제관계의 긴장은 이 두 질문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나온다.
2026년 들어 벌어진 일들을 보면 그 충돌이 선명하다.
관세라는 이름의 압박
올해 미국의 통상 정책은 한국에 우호적이지 않았다. 2월 연방대법원이 IEEPA 관세를 위법으로 판결하자 트럼프 행정부는 즉각 무역법 122조로 10% 임시 부가관세를 부과했고,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해 무역법 301조 조사를 두 갈래로 진행했다. 강제노동 혐의 조사와 구조적 과잉생산 혐의 조사. 한국은 두 조사 모두의 대상에 포함됐다.
6월 2일 USTR은 강제노동 조사 결과를 공개하며 60개 경제권에 추가 관세를 예고했다. 미국 싱크탱크 애틀랜틱 카운슬은 진행 중인 301조 조사가 완료될 경우 이론적으로 연간 최대 1690억 달러의 관세 수입을 창출할 수 있다고 추산했다. 이 모델에서 한국으로부터 발생하는 관세 수입은 연간 43억 달러로 계산됐다.
주목할 점은 과잉생산 301조 조사의 대상 업종이다. 자동차·부품, 반도체, 철강·알루미늄, 조선, 배터리, 기계류가 명시돼 있다. 공교롭게도 한국이 세계적 경쟁력을 가진 산업 거의 전부다. 한국이 잘하는 분야가 곧 미국의 견제 대상이 되는 구조다.
"더 투자하라"는 요구
관세보다 더 직접적인 건 투자 압박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100% 관세"를 지렛대로 미국 내 추가 투자를 요구해왔다.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은 올해 초 마이크론 신규 공장 착공식에서 대만이 대규모 현지 투자를 조건으로 관세 혜택을 받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대만의 사례를 한국에 들이미는 방식이다.
삼성전자는 텍사스주 테일러에 370억 달러 규모 파운드리 공장 완공을 앞두고 있고, SK하이닉스는 인디애나주에 패키징 공장을 짓고 있다. 그런데도 미국은 "신규 투자"를 더 요구한다. 한국 기업이 이미 진행 중인 투자가 '신규'에 포함되는지조차 협상 대상이다. 미국 영토 안에 공장을 짓고 일자리를 만들고 기술을 이전하라는 압박이 계속된다.
여기서 미국의 속내가 드러난다. 미국이 원하는 건 한국 기업의 '성공'이 아니라 한국 기업의 '미국 내 생산'이다. 삼성과 SK가 돈을 버는 것 자체엔 관심이 없다. 그 생산 능력과 일자리가 한국이 아니라 미국 땅에 있길 바란다.
그런데 왜 한국을 완전히 누르지 않는가
여기서 반대편 논리가 등장한다. 미국이 한국 반도체를 무한정 압박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경향신문이 인용한 업계 관계자의 말이 핵심을 짚는다. 미국에서 메모리 반도체가 나오는 곳이 없고, 공장은 하루이틀에 지어지지 않는다. 추가 투자가 이뤄지지 않아 메모리 반도체 관세가 높아지면 미국으로서도 손해라는 것이다. 미국 빅테크의 AI 데이터센터는 삼성과 SK하이닉스의 HBM 없이 돌아가지 않는다. 한국 반도체를 너무 강하게 누르면 엔비디아도, 마이크로소프트도, 구글도 타격을 받는다.
젠슨 황이 7개월 만에 한국을 다시 찾아 삼성·SK·현대차·네이버를 연쇄 회동한 것이 그 증거다. 미국 최고 기업이 한국의 제조 역량을 필요로 한다. 미국 정부는 누르고 싶어 하지만, 미국 기업은 한국이 잘 만들어주길 바란다. 미국 안에서도 입장이 갈린다.
안보 차원에서도 마찬가지다. 미국은 인도·태평양에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한국이라는 동맹이 필요하다. 한국 경제가 무너지면 동맹의 가치도 떨어진다. 방산 협력에서 한국이 나토 국가들에 무기를 빠르게 공급하는 것도 미국 입장에서는 부담을 나눠 지는 것이다. 너무 약한 한국은 미국에도 부담이다.
결국 미국이 원하는 한국의 모습
종합하면 미국이 바라는 한국은 분명한 형태를 가지고 있다. 안보적으로는 강하고 충실한 동맹, 경제적으로는 미국 영토에 투자하고 미국 기업을 보완하되 미국 기업을 위협하지는 않는 파트너. 한국이 반도체를 잘 만들어 미국 빅테크에 공급하는 건 환영하지만, 한국이 미국을 제치고 첨단 산업의 주도권을 쥐는 건 경계한다.
PwC 보고서가 지적한 '관세 변동성의 상시화'가 이 양면성을 보여준다. 관세가 협상 종료가 아니라 압박 수단으로 상시 기능한다는 것. 한국이 말을 잘 들으면 풀어주고, 선을 넘으려 하면 다시 조이는 도구다. 미국은 한국을 적으로도, 완전한 우방으로도 대하지 않는다. 관리 대상으로 본다.
한국에게 남는 선택
그렇다면 한국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답은 미국의 선의에 기대지 않는 것이다. 미국이 한국 경제의 발전을 순수하게 응원할 거라는 기대는 동맹의 낭만일 뿐, 국가 간 경제관계의 현실이 아니다. 미국은 자국 이익에 따라 움직이고, 그 이익이 한국과 일치할 때만 한국을 돕는다.
이익이 일치하는 지점을 늘리는 게 한국의 과제다. 미국 빅테크가 한국 반도체 없이는 못 버티게 만드는 기술 초격차, 미국이 대체할 수 없는 제조 역량, 미국이 필요로 하는 안보 기여. 이것들이 클수록 미국의 압박은 제한된다. 반대로 한국이 대체 가능한 존재가 되는 순간, 미국은 더 강하게 누를 것이다.
미국은 한국 경제가 잘되길 바라지 않는다. 정확히는, 미국에 도움이 되는 만큼만 잘되길 바란다. 그 냉정한 현실을 인정하는 데서 한국의 전략이 시작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