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e코노믹 = 우혜정 기자 | 한국 수출이 마침내 월 1000억 달러 고지를 밟았다. 산업통상부가 1일 발표한 '2026년 6월 및 상반기 수출입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수출액은 1022억5000만 달러로 1년 전보다 70.9% 급증했다. 월간 수출액이 1000억 달러를 넘어선 것은 사상 처음으로, 독일과 중국, 미국에 이어 전 세계에서 네 번째 기록이다. 하지만 시장의 표정은 마냥 밝지 않다. 사상 최대 무역흑자에도 원·달러 환율은 1500원대에서 내려올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어서다. 수출 지표와 통화 가치가 정반대로 움직이는 이례적 국면이 이어지고 있다.
반도체가 끌어올린 신기록
6월 수출 호조의 중심에는 단연 반도체가 있다. 글로벌 인공지능(AI) 인프라 투자 붐에 따른 메모리 수요 폭발로 고정가격이 급상승하면서 6월 반도체 수출은 전년 대비 199.5% 폭증한 448억2000만 달러를 기록했다. 반도체 수출이 월 400억 달러를 돌파한 것 역시 이번이 처음이며, 15개월 연속으로 해당 월 기준 역대 최대 실적 행진을 이어갔다.
가격 상승세가 가파르다. DDR5 16Gb 고정가격은 3월 31.0달러에서 4월 35.3달러, 5월 37.5달러를 거쳐 6월 40.0달러까지 뛰었다. 낸드플래시(128Gb)도 1월 9.5달러에서 6월 28.8달러로 세 배 가까이 올랐다. 물량보다 단가가 실적을 밀어 올린 셈이다.
반도체만 뛴 것은 아니다. 20대 주력 수출품목 가운데 18개 품목이 플러스를 기록했고, 빅테크 기업들의 SSD 수요가 몰린 컴퓨터 수출이 308.8% 증가한 54억1000만 달러를 나타냈다. 대중국 수출은 92.1% 급증한 200억3000만 달러, 대미국 수출도 78.6% 늘어난 200억2000만 달러를 기록하며 양대 시장에서 나란히 200억 달러를 넘어섰다.
이에 힘입어 6월 무역수지는 361억5000만 달러 흑자로 사상 처음 300억 달러를 넘어섰고, 상반기 누적 수출은 48.4% 증가한 4967억 달러, 누적 무역수지는 1383억 달러 흑자로 모두 상반기 기준 역대 최대치를 갈아치웠다. 상반기 반도체 누적 수출액 1924억 달러는 이미 지난해 연간 실적인 1734억 달러를 반년 만에 추월한 수치다.
그런데 왜 원화는 약한가
교과서적으로 보면 대규모 무역흑자는 원화 강세 요인이다. 수출로 벌어들인 달러가 국내로 들어와 원화로 환전되는 과정에서 원화 수요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현실은 반대로 가고 있다.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2분기 달러·원 평균 환율은 1500원을 넘어서며 외환위기 이후 28년 만에 처음으로 분기 평균 1500원대를 기록했다. 상반기 평균 환율도 1484.56원으로 1998년 상반기 이후 가장 높았다.
괴리의 핵심은 자본 유출이다. 외국인 투자자는 올해 들어 6월 26일까지 유가증권시장에서 136조7841억 원어치 주식을 순매도했고, 6월 한 달에만 37조 원 가까운 매도세가 이어졌다. 달러로 환산하면 상반기에만 약 890억 달러 규모로, 한국은행이 제시한 올해 경상수지 흑자 전망치 2500억 달러와 비교해도 작지 않은 규모다. 무역으로 들어오는 달러보다 증시에서 빠져나가는 달러의 체감 압력이 크다는 얘기다.
엔화 약세도 원화의 발목을 잡고 있다. 달러·엔 환율은 지난달 25일 장중 161.939엔까지 올라 약 2년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일본은행이 기준금리를 31년 만의 최고 수준인 1%로 올렸음에도 엔저 흐름은 꺾이지 않았다. 원화와 엔화가 동조화 경향을 보이는 만큼 엔저가 지속되는 한 원화만 나 홀로 강세로 돌아서기는 쉽지 않다. 전규연 하나증권 연구원은 매파적인 연준 위원들의 스탠스와 미국 경제 호조를 근거로 당분간 달러·원 환율의 상방 압력이 우세할 것으로 내다봤다.
흑자의 그늘, 하반기 변수는
고환율은 수출 기업에는 가격 경쟁력이라는 선물을 안기지만, 내수에는 청구서로 돌아온다. 원유를 비롯한 에너지 수입 부담이 대표적이다. 6월 수입액은 30.1% 증가한 661억 달러였는데, 물량이 10% 줄었음에도 단가 상승으로 원유 수입액이 50.4% 급증했다. 환율과 유가가 동시에 오르면 수입물가를 거쳐 소비자물가를 자극하는 경로가 열린다. 수출 대기업과 내수·서민 경제의 온도 차가 커질 수 있는 구조다.
반도체 편중도 짚어볼 대목이다. 지난해 전체 수출에서 24%였던 반도체 비중은 올해 상반기 38%까지 올라갔다. 메모리 가격이 꺾이는 순간 수출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김정관 산업부 장관은 전날 방송에 출연해 "반도체는 세계적인 증설 전쟁이 진행 중으로, 현재 한국의 메모리 점유율이 60%지만 지금 속도면 50%대로 떨어질 수 있다"고 경계했다.
그럼에도 연간 전망은 밝은 편이다. 상반기 실적이 5000억 달러에 육박하면서 연간 수출 1조 달러 달성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 장관은 "하반기에도 미 관세조치, 유가 변동성, 글로벌 경기 둔화 가능성 등 불확실성이 계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주요국과 긴밀한 협의를 지속해 우호적 수출 환경을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수출 1조 달러라는 이정표와 원화 가치 1500원이라는 경고등. 하반기 한국 경제는 이 두 숫자 사이 어딘가에서 방향을 정하게 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