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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story] '미르의 아버지' 박관호, 26년 만의 퇴장…K-게임 1세대 시대 저무나

투데이e코노믹 = 이혜진 기자 | 국내 게임산업의 한 세대가 막을 내리고 있다. 위메이드 창업자 박관호 의장이 보유 지분 전량을 중국계 자본에 매각하면서다. 넥슨, 엔씨소프트, 크래프톤 등 국내 주요 게임사들이 창업자 또는 창업자 일가 중심의 지배구조를 유지해온 가운데, 창업자가 경영권까지 넘기며 회사를 완전히 떠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업계에서는 "국내 게임산업 한 세대가 마무리되는 느낌"이라는 반응까지 나온다.

 

시가총액의 1.4배, 주가의 3.6배

 

위메이드는 지난달 30일 박 의장이 보유한 주식 1335만738주, 지분율 39.33% 전량을 투자 플랫폼 네오펄스에 매각하는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했다고 공시했다. 매각 대금은 약 9200억원, 주당 가격은 6만8910원이다. 공시일 종가 1만9330원의 3.6배에 달하는 파격적인 경영권 프리미엄이 붙었다. 장기 실적 부진으로 시가총액이 6500억원 안팎까지 떨어진 회사의 지분 39%에 9200억원이 매겨진 셈이다.

 

인수 주체인 네오펄스는 2025년 10월 설립된 법인으로, 지분 전량을 홍콩 소재 투자운용사 셩송 인베스트먼트가 보유하고 있으며 알리바바 및 중국 주요 게임 기업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계약금 920억원은 계약 당일 지급됐고, 잔금 8280억원이 지급되는 10월 30일 거래가 종결되면 네오펄스는 기존 보유분을 더해 지분율 40.25%로 위메이드 최대주주에 오른다.

 

프리미엄의 정체는 '미르'라는 자산

 

실적이 부진한 회사에 왜 이런 가격이 매겨졌을까. 답은 IP에 있다. 위메이드의 대표작 '미르의 전설2'는 중국에서 '전기(传奇)'라는 이름으로 국민 게임급 인지도를 구축했고, 수많은 현지 게임이 이를 기반으로 제작될 정도로 영향력이 크다. 위메이드가 지난해 거둔 미르 IP 라이선스 매출만 1000억원 안팎으로 알려졌으며, 이번 9200억원의 기업가치에는 자회사 전기아이피를 통해 입증된 미르 IP의 중국 내 수익 창출력과 AI 접목·글로벌 유통에 따른 성장 잠재력이 반영됐다는 것이 회사 측 설명이다.

 

박 의장은 매각 당일 임직원 서신에서 "한국 시장만으로 회사의 미래를 그리던 시대는 지났다"며 "미르 IP는 중국에서 거대한 가치를 만들어내고 있고, 동시에 북미와 유럽이라는 또 하나의 큰 시장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이 두 축을 온전히 우리의 성장으로 전환하기 위한 파트너와 자원이 필요했다"고 매각 배경을 밝혔다.

 

절묘한 타이밍, 커지는 뒷말

 

다만 매각 과정을 둘러싼 해석은 엇갈린다. 박 의장은 2024년 3월 장현국 전 대표 사임 이후 12년 만에 경영 일선에 복귀했다. 당시 위메이드는 위믹스 상장폐지 논란과 사법 리스크, 실적 악화가 겹친 상황이었는데, 이후 비용을 줄이고 미르 IP 라이선스 매출을 앞세워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매각 직전 미르 IP 관련 분쟁이 잇따라 정리된 점까지 겹치면서, 업계에서는 복귀 후 2년간의 행보가 결과적으로 "매각을 위한 정지 작업이었던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네오펄스가 지난해 박 의장 측 지분이 담보·손실 보전 구조에 묶여 있을 때 구주 거래에 참여했던 사실도 재조명되고 있다. 당시에는 우호 투자자로 해석됐지만, 1년이 지나지 않아 경영권까지 인수하면서 그 거래가 본계약을 위한 사전 단계였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아이러니한 대목도 있다. 박 의장은 중국 게임사들과 미르 IP 저작권 및 수익 분배를 두고 치열한 법적 공방을 벌인 끝에 승소하며 '미르의 전설'을 지켜낸 인물이다. 그렇게 지켜낸 IP가 결국 중국 자본의 품에 안기게 된 것이다.

 

K-게임 침식 우려와 남은 질문들

 

업계의 시선은 이번 딜 하나에 머물지 않는다. 위메이드는 국내 MMORPG 시장을 대표하는 개발사 가운데 하나로, 단순히 지분만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장기간 축적한 개발 노하우와 기술 경쟁력까지 사실상 중국 자본 영향권에 들어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새 주인이 개발 조직보다 IP 수익화에 무게를 둘 경우 국내 개발 인력과 독립 경영 체제가 얼마나 유지될지 불투명하다는 지적도 있다.

 

위믹스로 대표되는 블록체인 사업의 운명도 안갯속이다. 네오펄스가 중국 시장 확장을 주요 전략으로 내세운 만큼, 가상자산 관련 영업을 불법 금융활동으로 규정한 중국 본토의 규제 환경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르 IP의 중국 사업화는 본업에 호재일 수 있지만, P2E와 가상자산 연동 게임은 중국 규제 민감도가 가장 높은 영역이기 때문이다.

 

한편 시장의 또 다른 관심은 박 의장의 다음 행보다. 이번 거래로 확보하게 될 약 9200억원의 실탄을 어디에 투자할지에 이목이 쏠린다. 1996년 액토즈소프트 창립 멤버로 게임업계에 발을 들여 30년간 산업을 이끌어온 1세대 개발자의 상징적 인물이, 이번엔 창업자가 아닌 투자자로 어떤 판을 벌일지가 업계의 새로운 관전 포인트로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