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e코노믹 = 우혜정 기자 | 한국은행이 마침내 방향을 틀었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16일 서울 중구 본점에서 통화정책방향 결정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연 2.50%에서 2.75%로 0.25%포인트 인상했다. 한은이 기준금리를 올린 것은 2023년 1월(3.25→3.50%) 이후 3년 6개월 만이다. 지난해 5월 마지막 인하 이후 여덟 차례 회의 연속 이어진 14개월간의 동결 행진도 이날로 막을 내렸다. 인하기와 동결기를 지나 통화정책이 본격적인 긴축 국면으로 전환된 것이다.
이날 결정은 금통위원 7명 전원의 만장일치로 이뤄졌다. 신현송 총재가 취임 후 주재한 두 번째 통방 회의로, 첫 회의 때 푸른색 넥타이를 맸던 신 총재가 이날은 금리 인상을 상징하는 붉은색 넥타이를 착용하고 등장한 장면도 화제가 됐다.
물가·성장·집값·환율, 네 개의 화살표가 한 방향을 가리켰다
인상의 논리는 통화정책방향 결정문에 압축돼 있다. 금통위는 "성장세가 수출과 투자를 중심으로 강화되고 있는 가운데 물가상승률은 상당 기간 목표 수준을 상회할 것으로 보인다"며 "금융안정 측면의 리스크도 지속되고 있는 만큼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밝혔다.
지표가 이를 뒷받침한다. 6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3.2%로 30개월 만에 가장 높았고, 두 달 연속 3%대를 기록하며 한은의 물가안정목표 2%를 크게 웃돌았다. 금통위는 누적된 비용 압력이 당분간 지속되는 가운데 수요 측 물가 압력도 점차 확대될 것으로 진단했다. 성장 쪽에서는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이끄는 수출 호조가 금리 인상의 부담을 덜어줬다. 통상 금리 인상은 경기를 식히는 부담 때문에 주저하게 되지만, 상반기 수출이 사상 최대를 기록하는 국면에서는 그 부담이 크지 않다.
금융안정 리스크도 무시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커졌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집값 오름세가 다시 시작되면서 은행 가계대출이 확대됐고, '빚투'로 대표되는 기타대출 증가세도 이어졌다. 여기에 1500원대를 넘나드는 고환율 문제가 겹쳤다. 6월 월평균 원·달러 환율은 1527.3원으로 외환위기 당시인 1998년 1~2월에 이어 역대 세 번째로 높았다. 이번 인상으로 한미 금리차는 상단 기준 1.00%포인트로 0.25%포인트 좁혀졌다. 미국과 이란의 갈등 재점화로 위험 회피 심리가 퍼지고 외국인 매도세의 마무리를 단언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금리차 축소는 환율 방어의 성격도 갖는다.
예고된 인상, 그래서 시장은 놀라지 않았다
이번 결정은 사실상 예고편이 충분했던 인상이다. 지난 5월 금통위에서 장용성 위원과 유상대 부총재가 인상 소수의견을 냈고, 신 총재는 당시 기자간담회에서 "향후 논의의 대상은 금리를 언제, 얼마나 빨리, 어디까지 올릴지"라며 인상을 기정사실화했다. 지난 9일 국회 업무보고에서도 적절한 시기의 인상 필요성을 재확인했다. 채권시장 전문가 설문에서도 인상 전망이 압도적 다수였다. 미국 쪽 사정도 같은 방향이었다. 케빈 워시 연준 의장은 14일 하원 청문회에서 높은 인플레이션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강조하며 매파 기조를 분명히 했다.
관심은 이제 '어디까지, 얼마나 빨리'로
방향이 정해진 만큼 시장의 시선은 다음 스텝으로 옮겨갔다. 신 총재는 이날 "향후 통화정책은 금리 인상 기조를 이어나갈 필요가 있다"며 "추가 인상의 시기와 속도는 물가상승 압력의 정도와 경기 개선 흐름, 금융안정 상황 등을 점검하면서 결정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일회성 인상이 아닌 인상 사이클의 시작임을 공식화한 셈이다.
전문가 전망은 속도와 최종 금리 수준에서 갈린다. 김지만 삼성증권 연구원은 분기에 한 차례 수준의 인상이 적절하다며 다음 인상 시점을 10월로 예상했다. 김진욱 씨티은행 이코노미스트는 올해 7월과 10월, 내년 1월과 4월까지 네 차례 인상으로 최종금리가 3.50%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반면 정용택 IBK투자증권 연구위원은 반도체 경기가 올해를 고점으로 내년 하강 국면에 진입할 경우 내년 상반기 말부터 금리 인하가 시작돼 연말 기준금리가 2.50%까지 되돌아갈 것으로 전망했다. 긴축의 지속 여부가 결국 반도체 사이클의 수명에 달려 있다는 얘기다.
대출자에게는 청구서, 시장에는 시험대
금리 인상의 청구서는 차주에게 먼저 도착한다. 변동금리 대출자의 이자 부담 증가가 불가피해졌고, 주택담보대출 원리금 상환 부담도 커질 전망이다. 한은은 이날 기준금리와 함께 금융중개지원대출 금리도 연 1.00%에서 1.25%로 올려 즉시 적용하기로 했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금리 인상기 금융시장 비상관리를 언급하며 시장 변동성 대응에 나섰다.
3년 6개월 만에 돌아온 인상 사이클은 이제 첫발을 뗐다. 물가와 집값을 잡으려는 통화 긴축이 반도체가 이끄는 성장의 온기를 얼마나 식히지 않고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을지, 한국 경제는 오랜만에 낯익은 시험대에 다시 올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