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e코노믹 = 유서진 기자 | 한국 증시가 유례없는 널뛰기 장세를 연출한 한 주였다. 지난 13일 코스피는 전 거래일보다 669.01포인트(8.95%) 내린 6806.93에 거래를 마쳤다. 하루 낙폭이 600포인트를 넘어서면서 장중 매도 사이드카에 이어 올해 들어 7번째 서킷브레이커까지 발동됐다. SK하이닉스가 17년 만에 최대 낙폭을 기록하고 삼성전자도 10% 넘게 급락하면서 시장은 '검은 월요일'이라는 말을 다시 꺼내 들었다.
반전은 이틀 뒤에 왔다. 15일 코스피는 미국 물가 지표 둔화와 반도체주 반등에 힘입어 6.24%(427.58포인트) 오른 7284.41로 마감했다. 그러나 상승은 하루를 넘기지 못했다. 16일 코스피는 전장보다 463.81포인트(6.37%) 하락한 6820.60에 마감하며 전날 급등분을 고스란히 반납했고, 7000선이 다시 깨졌다. 이날 코스피와 코스닥에 나란히 매도 사이드카가 발동되면서 올해 양 증시의 사이드카 발동은 각각 37회, 22회로 늘었다. 사이드카가 더 이상 이례적 사건이 아니라 일상이 된 셈이다.
주간 성적표는 참담하다. 7월 13일부터 16일까지 한 주 동안 코스피는 8.77% 내렸고 코스닥은 5.44% 하락했다.
방아쇠는 반도체… ADR 상장 직후 터진 실적 눈높이 조정
급락의 진원지는 반도체다. 공교롭게도 SK하이닉스의 나스닥 ADR(미국주식예탁증서) 상장이라는 호재 직후에 매물이 쏟아졌다. SK하이닉스는 지난주 금요일 미국 증시에서 ADR 상장이 성공적으로 이뤄졌음에도 13일 급락했는데, 이날 한국투자증권이 SK하이닉스의 2분기 영업이익이 컨센서스인 65조원을 8% 밑도는 60조4000억원이 될 것으로 전망하는 보고서를 냈기 때문이다. 경쟁사 대비 고대역폭메모리(HBM) 매출 비중이 높아 시장 평균보다 평균판매가격(ASP) 상승률이 낮다는 이유였다.
호재의 소멸도 변동성을 키웠다. 증권가에서는 이번 SK하이닉스 급락에 대해 반도체 업황이나 중장기 이익 방향성이 훼손됐다기보다 ADR 상장이라는 단기 이벤트 소멸과 높아진 실적 기대치, 레버리지 포지션 정리가 동시에 반영된 변동성 조정에 가깝다는 분석이 나왔다. 실제 미국 시장에서도 SK하이닉스 ADR은 하루 27.29% 급등한 뒤 다음날 9.00% 하락하는 극단적 흐름을 보였다.
여기에 대외 변수가 겹겹이 쌓였다. 미국과 이란의 갈등 재점화, 미국 장기금리 상승,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를 둘러싼 수급 불안이 낙폭을 키웠다. 미국 내 AI 데이터센터 건설 지연, 워런 버핏의 AI 거품 경고 등 반도체 업황 둔화 우려도 투자심리를 짓눌렀다. 특히 레버리지 ETF는 정치권으로까지 논쟁이 번졌다.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가 증시 변동성을 키웠다는 비판이 커지자 당국은 폐지 대신 규제에 무게를 두고 시장상황 점검회의에서 들여다보고 있다.
팽팽한 고점 논쟁… "피크아웃" vs "펀더멘털 유효"
시장의 시선은 이제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한다. 반도체 사이클이 정점을 지났는가. 코스피가 고점 대비 20% 이상 하락한 가운데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다시 오를 수 있다는 주장과 과열이라 조정이 길어질 수 있다는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과열이 아니라는 측은 주가수익비율(PER)이나 주가순자산비율(PBR) 같은 밸류에이션 지표가 타국 대비 낮고 메모리 반도체 성장이 이어질 가능성을 근거로 들고, 과열이라는 측은 경기 선행지표 약세와 메모리 반도체 성장률 둔화, 타국 증시 대비 과도한 급등을 지적한다.
주목할 만한 것은 통화당국 연구진의 판단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둘러싼 '반도체 고점론'이 거세지고 있지만, 주가와 별개로 실물 반도체 경기는 상당 기간 확장세를 이어갈 가능성이 크다는 한국은행 연구진의 분석이 나왔다. 주가의 조정과 업황의 둔화를 구분해야 한다는 얘기다. 낙관론 쪽에서도 비슷한 논리가 나온다. 실질적인 수요 감소가 없는 상태에서 진행된 이번 조정은 기술적 되돌림의 성격이 짙으며, 급락으로 코스피 밸류에이션이 역대 최저 수준까지 낮아진 만큼 7000선 초반에서 하방 경직성이 강화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24일 SK하이닉스 실적이 분수령… 숫자보다 '하반기 가이던스'
다음 주가 고비다. 오는 24일 발표되는 SK하이닉스의 2분기 실적은 반도체 업종과 코스피의 방향을 가를 핵심 변수다. 시장에서는 HBM 비중이 높은 SK하이닉스의 특성상 ASP 상승폭이 기대에 못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지만, 증권가는 단기 실적보다 HBM 가격과 수요, 하반기 실적 가이던스에 더 주목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SK하이닉스의 2분기 실적이 시장 기대를 다소 밑돌더라도 이를 반도체 업황의 고점 통과로 해석할 필요는 없다"며 "최근 이익 전망치 하향은 실적 눈높이 조정에 따른 것으로, 실적 발표를 계기로 반도체 이익 기대가 다시 살아난다면 코스피도 반등 탄력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 빅테크의 실적 발표도 같은 주에 몰려 있다. 이번 실적 시즌의 핵심은 단순한 이익 규모보다 향후 투자 계획으로, 특히 알파벳이 AI 인프라 투자를 얼마나 유지할지, 대규모 설비투자(CAPEX) 기조를 이어갈지가 글로벌 반도체 투자심리를 좌우할 전망이다. AI 인프라에 돈이 계속 흘러드는 한 메모리 수요의 큰 그림은 유지된다는 점에서, 빅테크의 투자 계획은 SK하이닉스 실적 못지않은 관전 포인트다.
단기 악재도 남아 있다. 중국 '키미 K3' 충격에 AI 반도체가 급락하면서 월요일 코스피가 다시 시험대에 오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저비용 중국 AI 모델의 등장이 고사양 반도체 수요 전망을 흔들 수 있다는 우려가 재점화된 것이다. 22일 발표되는 한국의 6월 생산자물가지수(PPI)도 지난주 기준금리 인상 이후 통화정책 경로를 가늠할 단서가 된다.
한 주 만에 지수가 9% 빠지고 6% 오르는 시장에서 방향을 단언하기는 어렵다. 다만 분명한 것은 이번 조정의 성격을 판정할 1차 증거가 24일에 나온다는 점이다. SK하이닉스의 숫자와 말이 고점론과 낙관론 중 어느 쪽에 힘을 실어줄지에 따라, 6800선이 바닥이었는지 아니면 중간 기착지였는지 드러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