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e코노믹 = 이혜진 기자 |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27일(현지시간) 브라질 상파울루주 피라시카바의 현대차 브라질공장을 아 중장기 성장 전략을 점검했다. 대통령의 브라질 국빈 방문에 동행한 경제사절단 일정 중 별도로 시간을 내 공장을 방문한 것인데, 그만큼 브라질 시장을 둘러싼 상황이 간단치 않다는 방증이다. 세계 6위 자동차 시장인 브라질에서 중국 업체들의 공세가 본격화되는 가운데, 현대차는 현지 전용 하이브리드와 수소 사업을 앞세워 방어전과 확장전을 동시에 치르겠다는 구상을 내놨다.
세계 6위 시장에서 벌어지는 새로운 경쟁
브라질은 2025년 산업수요 250만대 규모의 자동차 시장이자 연간 260만대를 생산하는 세계 8위 생산국이다. 희토류 매장량 세계 2위, 흑연 매장량 세계 20% 이상을 보유한 자원 부국이기도 하다. 전기차 배터리와 재생에너지 공급망 관점에서도 놓칠 수 없는 나라라는 얘기다.
시장의 성격은 독특하다. 휘발유와 에탄올을 함께 쓰는 FFV(혼합연료차량)가 수요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자동차 수입 관세는 35%에 달한다. 현지 생산 없이는 가격 경쟁 자체가 불가능한 구조다. 여기에 브라질 정부는 2023년 말 탈탄소 투자 기업에 감세·보조금을 주는 '그린 모빌리티 혁신(MOVER)' 프로그램을 도입했고, 그간 면제해 온 친환경차 관세도 이달부터 내연기관차와 같은 35%로 올렸다. 수입 전기차의 우회로를 막고 현지 생산 투자를 끌어내겠다는 신호다.
이 판을 흔드는 변수가 중국이다. 관세 면제 시기에 저가 전기차로 몸집을 불린 중국 업체들은 고관세 전환에 맞춰 현지 생산으로 전략을 바꿨다. BYD는 2021년 문을 닫은 포드 공장을 인수해 지난해 생산을 시작했고, 올해 상반기 브랜드 판매 순위를 지난해 8위에서 4위로 끌어올리며 단숨에 현대차 코앞까지 치고 올라왔다. 중국·브라질기업협의회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의 브라질 투자액은 전년보다 45% 늘어난 61억 달러(약 8조 9,600억원)에 이른다.
"위기를 넘어야 다음 도약"…현장에서 던진 메시지
정 회장은 공장 부지 내 중남미권역 R&D센터를 먼저 찾아 "지속가능한 중장기 사업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현지 R&D 기능을 강화하고 파워트레인 현지화를 더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어 생산라인에서 지난달 생산을 시작한 i20와 소형 SUV 크레타의 품질을 직접 살폈고, 올해 3월 누적생산 250만대를 넘어선 직원들을 격려했다.
임직원 업무보고 자리에서는 위기의식을 숨기지 않았다. 정 회장은 "브라질의 산업 환경 변화와 새로운 경쟁 국면을 맞아 여러 도전과 과제가 존재하지만, 이 위기를 극복해야 다음 단계의 성장과 도약이 가능하다"며 전사 차원의 지원을 약속했다.
전략의 세 축: SUV 확대, 브라질 전용 하이브리드, 수소
현대차가 제시한 대응 전략은 세 갈래다. 첫째는 SUV 라인업 확대다. 브라질에서 SUV 차급 비중은 지난해 43.0%에서 2030년 51.2%까지 커질 전망인데, 현대차는 상반기 딜러판매 SUV 1위에 오른 크레타를 앞세우면서 2030년까지 다양한 차급의 SUV를 순차 투입하기로 했다.
둘째는 브라질에 최적화된 친환경차다. 관세 35% 장벽 탓에 수입 전기차로는 승산이 없는 만큼, 소형 전기차의 현지 생산을 모색하는 한편 휘발유-에탄올 연료 기반 하이브리드(FFV-HEV) 전용 파워트레인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에탄올 연료 생태계라는 브라질 특유의 조건을 정면으로 겨냥한 현지 맞춤형 카드로, 인기 차급인 SUV에 얹어 조기에 내놓는다는 계획이다. 가격으로 밀어붙이는 중국 전기차와 정면 대결하는 대신, 브라질 소비자의 연료 습관에 밀착한 하이브리드로 차별화하겠다는 계산이 읽힌다.
셋째는 수소다. 브라질은 국가수소프로그램(PNH2)을 통해 저탄소 수소 산업을 키우며 수소 생산·수출국 도약을 노리고 있다. 현대차는 연료전지 기술과 제조 역량을 바탕으로 수소 상용차·수소 트램 같은 모빌리티 신시장은 물론, 그린수소 생산과 연료전지 시스템 공급, 재생에너지 발전소 구축까지 그룹사와 함께 발굴할 계획이다. 상파울루대학 등과의 산학협력도 병행한다. 자동차 판매를 넘어 에너지 사업자로 브라질에 뿌리내리겠다는 장기 포석이다.
상반기 판매는 7년 만의 최대…신차 i20가 시험대
수치만 보면 현대차의 브라질 사업은 순항 중이다. 브라질자동차유통연맹(FENABRAVE) 집계 기준 현대차는 올해 상반기 9만 6,723대를 팔아 2019년 이후 상반기 최대 실적을 거뒀다. 전년 동기 대비 12.1% 늘어난 수치로, 점유율 7.1%에 브랜드 순위 5위다. 2012년 출시된 HB20은 세단·해치백 합산 188만대를 넘어 200만대 돌파를 눈앞에 뒀고, 크레타도 57만대 이상 팔렸다.
관건은 지난달 생산을 시작한 i20다. 브라질 산업수요의 23%를 차지하는 B세그먼트를 겨냥해 FFV 전용 파워트레인을 얹은 전략 차종으로, HB20과 함께 소형 차급 쌍끌이 체제를 구축하는 임무를 맡았다. 현대차는 여행·리테일·엔터테인먼트 업체들과의 제휴 마케팅까지 동원해 i20를 안착시키고 올해 브라질에서 총 20만 4천대를 판매한다는 목표다.
한편 현대차 브라질공장은 브라질 연방 감사원의 '윤리경영 우수기업' 인증을 최근 10년 내 브라질 자동차기업 중 유일하게 획득했고, '일하기 좋은 기업'에 9년 연속 선정됐다. 2012년 이후 15년 연속 임금협상 무분규 기록도 이어가고 있다. 중국 자본의 물량 공세에 맞서는 현대차의 또 다른 자산이 14년간 쌓아온 현지 신뢰라는 점은, 이번 정 회장의 방문이 단순한 공장 시찰 이상의 의미를 갖는 이유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