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e코노믹 = 이혜진 기자 | 오픈AI가 지난 4일 공개한 차세대 모델 'GPT-6 아스트라'가 한국 반도체 시장을 다시 흔들고 있다. 7일 코스피는 하루 만에 4.61% 뛰어 6995.39로 마감했고, 8일 개장과 동시에 7045.79까지 올라 15거래일 만에 7000선을 되찾았다. 삼성전자는 7일 5.68%, SK하이닉스는 8.26% 급등했다. 두산테스나와 티에스이 같은 후공정 소부장주는 10% 넘게 뛰었다. 지난 8월 한 달 반도체 업종이 1.5% 뒷걸음질쳤던 것을 떠올리면, 분위기가 뒤집히는데 채 일주일이 걸리지 않았다.
문제는 이 랠리를 떠받치는 재료가 서로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는 점이다. 수요 쪽에서는 메모리 재고가 열흘치도 남지 않았다는 경고가 나오고, 비용 쪽에서는 원·달러 환율이 1330원대까지 내려앉아 달러로 버는 이익을 깎아먹기 시작했다. 주가는 앞의 재료만 반영하고 있다. 뒤의 재료가 실적에 찍히는 시점은 다음 달 3분기 잠정실적 발표다.
네 번째 분기점이라는 진단
증권가가 아스트라에 붙인 수식어는 '네 번째 AI 분기점'이다. 챗GPT가 대중화를, o1이 추론 확장을, 클로드 코드가 에이전트 상용화를 이끌었다면 아스트라는 장시간 업무를 통째로 위임할 수 있는 단계로 넘어갔다는 것이 유진투자증권의 평가다. 컴퓨터 사용 능력을 재는 OSWorld 2.0 벤치마크에서 아스트라는 약 40분 작업으로 72.6%를 기록했다. 직전 모델인 GPT-5.6이 75분을 들여 65.7%를 냈으니, 시간은 절반 가까이 줄이고 성과는 끌어올린 셈이다. 터미널벤치 4.0에서는 57.9%로 경쟁 모델을 근소하게 앞섰다.
숫자 자체보다 시장이 주목한 것은 아키텍처다. 아스트라는 같은 층 블록을 반복 사용해 파라미터를 늘리지 않고 연산 깊이를 확장하는 '루프드 트랜스포머' 구조를 채택했다. 모델 크기를 키우지 않으면서 생각하는 시간을 늘리는 방식인데, 이는 곧 토큰당 연산량이 늘어난다는 뜻이다. 에이전트가 사람 대신 몇 시간씩 작업을 돌린다면 추론 단계에서 소비되는 메모리 대역폭은 학습 단계와는 다른 차원으로 불어난다. 키움증권 한지영 연구원은 "GPU 컴퓨팅 수요와 HBM, 서버 D램 수요의 가시성을 높여줬다는 점이 수급과 심리 양쪽에서 무거워졌던 반도체주의 부담을 덜어줬다"고 짚었다.
과거 세 차례 분기점마다 메모리 주가가 계단식으로 올랐던 학습 효과도 작용했다. 외국인은 지난주 코스피에서 2조6000억원을 순매수했는데 그중 2조3000억원이 반도체에 몰렸다. 미래에셋증권이 집계한 상위 1% 투자자의 순매수 1, 2위도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였다.
열흘치 재고, 60%만 채우는 공급
랠리에 실체를 부여하는 것은 재고 숫자다. KB증권에 따르면 3분기 기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메모리 완제품 재고는 10일 미만으로 떨어졌다. 통상 4주 안팎을 정상 수준으로 보는 업계 기준에서 이 수치는 사실상 재고가 없다는 말과 같다. 글로벌 메모리 수요 중 실제로 공급되는 물량은 60% 안팎에 그친다는 추정도 나온다. 내년 D램과 낸드의 비트 기준 수요 증가율은 공급 증가율을 각각 10%포인트 이상 웃돌 것으로 전망된다.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는 이유는 HBM에 있다. 트렌드포스 집계로 주요 3사의 D램 웨이퍼 투입량에서 HBM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18%에서 올해 22%, 내년 30%로 올라간다. HBM은 같은 용량을 만드는 데 범용 D램보다 최대 3배의 웨이퍼를 잡아먹는다. HBM4 양산에 힘을 실을수록 서버용 범용 D램의 생산 여력은 줄어드는 구조다. 내년 글로벌 AI 인프라 투자가 전년보다 60% 늘어난 1조3000억달러로 상향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두 회사는 HBM과 범용 D램 중 어느 쪽도 포기할 수 없는 자리에 서 있다.
가격은 이미 반응하고 있다. 3분기 범용 D램 계약가격은 전 분기 대비 13~18%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고객사들은 물량을 선점하려고 장기공급계약을 늘리고, 계약을 잡지 못한 업체는 웃돈을 부른다. 한 업계 관계자는 "고객사가 요구하는 물량을 다 맞추기 어려울 만큼 공급이 빠듯하다"고 말했다. 신한투자증권은 메모리 업계의 이익 증가 기조가 최소 2년은 이어질 것으로 봤다.
완제품 시장이 먼저 흔들린다
메모리 회사에 호재인 이 국면이 산업 전체로 보면 그렇지 않다. 8GB·256GB 사양 스마트폰의 메모리 계약가격은 1분기 기준 전년 동기 대비 약 200% 뛰었다. 스마트폰 원가에서 메모리가 차지하는 비중은 10~15%에서 30~40%로 커졌다. 올해 글로벌 스마트폰 생산량은 전년 대비 10%, 노트북 출하량은 9.4%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메모리 가격 상승분만 소비자가격에 전가해도 노트북은 30% 이상 비싸진다.
이 대목에서 삼성전자의 처지는 SK하이닉스와 갈린다. 삼성은 메모리를 파는 회사이면서 스마트폰과 PC를 만드는 회사다. 2분기 DS부문이 89조원 넘는 영업이익을 내는 동안 DX부문은 적자를 기록했다. 메모리 가격이 오를수록 세트 사업의 원가 부담은 커진다. 갤럭시 폴더블 신제품이 출시된 지 한 달 남짓 지난 시점에서, 부품 가격이 판매량을 어디까지 누를지는 3분기 실적에서 확인될 대목이다.
물량을 못 받은 고객사가 다른 공급처를 찾아 나서는 것도 장기 리스크다. 지금이야 대체 공급자가 마땅치 않지만, 마이크론과 중국 CXMT가 범용 D램 증설로 빈자리를 노리는 상황에서 한국 업체가 HBM에 집중하는 동안 범용 시장 점유율을 내주는 시나리오는 배제하기 어렵다.
1330원 환율이 가져가는 몫
반도체주가 오르는 동안 외환시장에서는 반대 방향의 일이 벌어졌다. 7일 원·달러 환율은 장중 1330원대까지 내려가 1년 11개월 만에 최저를 기록했다. 2분기 말 1540원대였던 환율이 두 달 남짓 만에 13% 가까이 빠진 것이다. 외국인의 반도체 매수 자금이 원화로 환전되면서 환율을 끌어내리고, 그 환율이 다시 반도체 이익을 갉아먹는 순환이 시작됐다.
국내 메모리 업체는 매출 대부분을 달러로 받지만 비용의 20% 안팎은 원화로 나간다. 노무라증권은 원화 가치가 10% 오를 때 메모리 업체 영업이익이 약 12% 줄어드는 것으로 추정했다. 씨티그룹은 삼성전자의 3분기 영업이익 전망치를 115조5000억원에서 104조1000억원으로 10% 낮췄고, SK하이닉스는 76조7000억원에서 74조원으로 조정했다. 다올투자증권도 환율 요인만으로 메모리 3분기 영업이익이 기존 추정 대비 6~7% 깎일 수 있다고 봤다.
자동차 쪽 계산서는 더 크다. 현대차와 기아는 2023년 1분기부터 올해 2분기까지 고환율 덕에 각각 3조7000억원, 4조3000억원의 영업이익 증가 효과를 봤다. 분기당 2600억원, 3100억원꼴이다. 유안타증권은 9월 환율이 1350원 수준을 유지할 경우 3분기 평균 환율이 전 분기보다 87원 낮은 1415원이 되며, 이는 최근 10년 중 가장 큰 분기 낙폭이라고 계산했다. 3년 반 동안 순풍이었던 환율이 한 분기 만에 역풍으로 돌아서는 것이다. 현대차 주가가 8일 소폭 하락한 배경에는 이 계산이 깔려 있다.
물론 환율 하락은 철강, 항공, 음식료처럼 달러로 원자재를 사들이는 업종에는 원가 절감 요인이다. 조선 대형사는 선물환으로 환위험을 거의 전부 헤지해 둔 상태라 타격이 제한적이다. 그러나 코스피 시가총액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반도체와 자동차가 동시에 환율 역풍을 맞는다면, 지수 7000의 무게는 지금보다 훨씬 무거워진다.
3분기 실적이 가를 것
지금의 랠리는 두 개의 시계가 어긋나 있는 구간에서 진행되고 있다. 아스트라가 열어젖힌 수요는 내년 이후 실적에 반영될 이야기고, 환율은 당장 다음 달 나올 3분기 성적표에 찍힌다. 재고가 열흘 남았다는 것은 가격 협상력이 최고조라는 뜻이면서, 동시에 더 팔 물건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수요가 아무리 늘어도 웨이퍼 투입량이 정해져 있다면 매출 증가분은 판가 인상에서만 나온다.
증권가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내년 실적 기준 PER 3배 수준으로 극단적 저평가 상태라고 본다. 이 계산이 맞다면 주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다만 그 실적 추정에 1330원대 환율이 얼마나 반영됐는지는 증권사마다 다르고, 8일 장에서 외국인이 603억원 순매도로 돌아선 것은 급등 뒤 숨 고르기가 시작됐다는 신호로 읽힌다. 아스트라가 바꾼 것은 수요의 가시성이지 이번 분기의 손익계산서가 아니다. 7000피가 지붕인지 바닥인지는 10월 초 삼성전자 잠정실적에서 환율과 판가 중 어느 쪽이 더 크게 찍히느냐에 달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