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story] 반도체 사이클 전망②: AI가 만든 '이중 구조', 회복과 격차 동시에 진행

  • 등록 2026.03.20 17:4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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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e코노믹 = 이혜진 기자 | 글로벌 반도체 산업이 회복 국면에 진입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지만, 이번 사이클은 과거와 확연히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인공지능(AI) 수요 급증이 기존 반도체 시장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면서 '회복'과 '격차'가 동시에 나타나는 이중 구조가 형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전통 사이클의 붕괴, AI가 새 판을 짜다

 

과거 반도체 업황은 스마트폰·PC 등 전통 IT 수요에 따라 업체들이 동반 상승·하락하는 패턴을 보여왔다. 그러나 최근에는 AI 반도체 중심의 고성장 영역과 전통 수요 기반의 완만한 회복 구간이 뚜렷하게 분리되고 있다. 2025년을 기점으로 데이터센터 부문이 스마트폰과 PC를 제치고 최대 반도체 수요처로 부상했으며, 데이터센터는 연 8~9%대 성장이 예상되는 반면 스마트폰과 PC는 2~3%대 성장에 그칠 전망이다. 반도체 수요의 무게중심 자체가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엔비디아·K반도체, AI 특수의 최대 수혜자

 

현재 시장에서 가장 뚜렷한 흐름은 AI 관련 반도체다. 그 중심에 엔비디아가 있다. 엔비디아는 2026회계연도(2025년 2월~2026년 1월) 연간 매출 약 308조 원을 기록하며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을 달성했고, 이 중 데이터센터 부문이 전체의 약 90%를 차지했다. AI 학습과 추론 수요가 동시에 폭발하면서 GPU 공급이 항상적으로 부족한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을 장악한 한국 업체들도 전례 없는 실적을 기록하고 있다. SK하이닉스의 2025년 연간 영업이익은 47조 원을 넘어서며 영업이익률 49%라는 이례적인 수치를 달성했다. HBM 제품은 일반 DDR5 대비 판매 가격이 5~10배 높지만 생산원가는 3~4배 수준에 불과해 압도적인 마진율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같은 AI 호황 속에서도 포지셔닝에 따라 기업 간 희비는 엇갈렸다. 2025년 2분기 HBM 비트 출하 기준으로 SK하이닉스 62%, 마이크론 21%, 삼성전자 17%를 기록했으며, D램 전체 매출 점유율도 SK하이닉스가 삼성전자를 앞질렀다. HBM 기술 선점 여부가 실적 격차를 만들어낸 것이다. 글로벌 HBM 시장 규모는 2025년 약 51조 원에서 2028년 약 147조 원으로 연평균 40% 가까이 성장할 전망이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차세대 HBM4 공급분의 90% 이상을 담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통 IT 수요는 '조심스러운 회복'

 

반면 스마트폰과 PC 등 전통 IT 수요는 회복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2025년 PC 시장의 회복은 수요가 실질적으로 늘었다기보다는 코로나19 이후 급감했던 교체 주기가 복원된 것에 가깝다. 일반 소비자 시장은 비싸진 PC 가격과 스마트폰·태블릿과의 기능 중첩으로 교체 주기가 오히려 길어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AI PC 탑재율 확대라는 긍정적 요인이 있지만, 대중적 수요 반등으로 이어지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한 상황이다.

 

공급 전략의 변화: 증설보다 선택과 집중

 

공급 측면에서는 투자 전략의 뚜렷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과거의 공격적 증설 대신 고부가 제품 중심의 선택적 투자가 대세다. SK하이닉스는 2026년 30조 원대 중반까지 설비투자를 확대할 계획으로, 청주 M15X 팹에 20조 원 이상을 투입해 HBM 생산 거점으로 육성하고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는 600조 원 규모의 초대형 투자를 단행한다. 삼성전자 역시 HBM 월 생산량을 현재 17만 장에서 20만 장으로 끌어올리는 등 고부가 메모리 확대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첨단 패키징 기술 등 후공정 분야의 부상도 주목할 대목이다. TSMC의 CoWoS 생산 능력은 AI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2024년 대비 2025년 두 배 수준으로 확대됐으며, AI 반도체는 단순 칩 성능을 넘어 패키징 기술이 전체 성능을 결정짓는 구조로 진화하고 있다.

 

지정학 리스크: 공급망 재편의 가속화

 

지정학적 변수도 사이클 흐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수출 규제가 강화되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중국 팹 운영 환경도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반면 미국 정부는 SK하이닉스의 인디애나주 AI 메모리 패키징 시설 건설에 보조금을 지원하며 공급망 재편을 적극 유도하고 있다. 각국 정부의 반도체 보조금 정책과 공급망 재편 전략이 사이클 방향에도 영향을 주는 새로운 변수로 부상했다.

 

마이크론의 경고: 공급 부족, 장기화 예고

 

미국 마이크론의 실적은 이 구조적 변화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마이크론의 2026 회계연도 1분기(9~11월)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57% 증가한 약 20조 원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으며, 경영진은 "현재 전체 공급량이 주요 고객 수요의 50%에 불과한 수준"이라며 공급 부족이 2026년 이후까지 지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마이크론은 최근 일반 소비자 대상 메모리 사업에서 철수하고 AI 메모리에 집중하는 전략으로 전환을 선언하기도 했다.

 

결국 현재 반도체 산업은 전통적 경기 사이클 위에 AI라는 구조적 성장 축이 결합된 새로운 국면에 진입한 것으로 평가된다. 단기적으로는 수요 변동성과 가격 조정이 반복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AI 중심의 고부가가치 시장 확대가 산업 전반의 수익성을 끌어올릴 가능성이 크다.

 

업계에서는 "이번 반도체 사이클은 과거처럼 전반적인 동반 회복이 아니라, AI 중심의 선택적 성장 구조가 특징"이라며 "어떤 기술과 시장에 포지셔닝하느냐에 따라 기업 간 격차는 앞으로 더욱 확대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혜진 기자 00700hj@todayeconomi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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