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story] 57조 버는 회사, 직원들은 왜 거리로 나왔나

  • 등록 2026.04.29 17:3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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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5월 총파업 초읽기…'역대급 실적'과 '성과급 분쟁'의 역설

투데이e코노믹 = 유서진 기자 | 타이밍이 묘하다

 

삼성전자가 이달 초 1분기 영업이익 57조 2000억 원을 발표했다. 단일 분기 역대 최고, 작년 연간 실적 전체를 뛰어넘은 숫자다. 그런데 불과 3주 뒤인 4월 23일, 서울 한복판에 삼성전자 노조원 4만 명이 모였다. 구호는 단순하다. "상한제 없애라."

 

5월 21일부터 6월 7일까지 18일간 총파업이 예고돼 있다. 쟁의행위 찬반투표 찬성률은 93.1%였다. 회사는 법원에 파업 금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노사 양측이 강 대 강으로 맞서고 있다.

 

회사가 사상 최대 실적을 내는 시점에 노조가 총파업을 예고하는 이 장면. 단순한 노사 갈등이 아니다. 한국 대기업의 성과 분배 구조가 어떻게 설계돼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건이다.

 

노조가 원하는 것

 

핵심 요구는 초과이익성과급(OPI) 상한선 폐지다. 현재 삼성전자는 연간 영업이익의 일정 비율을 OPI로 지급하되 상한이 정해져 있다. 노조는 이 상한선을 없애고, 영업이익의 20%를 성과급 재원으로 보장하라고 요구한다.

 

계산은 간단하다. 올해 삼성전자 연간 영업이익 전망치 중 일부 증권사 추정치는 300조 원을 넘는다. 20%면 60조 원이다. 회사가 수용할 수 없는 규모다. 회사 측은 DS(반도체) 부문이 국내 업계 1위를 달성할 경우 특별 포상 등을 통해 상한을 넘는 보상을 하겠다며 한발 물러섰다. 노조는 제도 자체를 바꾸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며 협상 중단을 선언했다.

 

노조가 추가로 요구하는 건 성과급 산정 기준의 투명화다. 지금은 경영진이 내부 기준으로 산정하는데, 그 기준이 공개되지 않는다. 1분기에 57조를 벌어도 내 성과급이 얼마가 될지 직원이 계산할 수 없는 구조다.

 

반도체 팹이 멈추면 생기는 일

 

삼성전자가 가처분까지 신청한 이유는 반도체 공장의 특수성 때문이다. 일반 공장은 가동을 멈췄다가 재개해도 비교적 빠르게 정상화된다. 반도체 팹은 다르다. 극도로 정밀한 장비들이 연속 공정으로 맞물려 있어서, 가동이 중단되면 재가동 후 수율이 정상 궤도에 오르기까지 파업 기간의 두 배 이상이 걸린다. 18일 파업이면 복구에 36일 이상이라는 뜻이다.

 

IT 전문매체 Wccftech는 18일 파업이 현실화될 경우 30조 원, 약 200억 달러 규모의 경제적 손실과 함께 전 세계 반도체 수급에 심각한 타격이 발생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삼성전자가 이미 미래 주문을 제한하고 기존 물량 소화에 집중하는 방어적 운영에 들어갔다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글로벌 빅테크들이 삼성 물량 부족분을 SK하이닉스로 얼마나 빠르게 전환하느냐도 변수다. 파업이 길어질수록 점유율 이동이 발생하고, 그게 단기 공백이 아니라 장기 고객 이탈로 이어질 수 있다. 메모리 반도체는 한번 바꾼 공급사를 쉽게 되돌리지 않는 구조다.

 

ESI는 하락, 청년 남성은 시장을 떠나고 있다

 

파업 이슈가 불거지는 동안 거시 경제 지표도 불편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한국은행이 어제 발표한 4월 경제심리지수(ESI)는 전월 대비 2.3포인트 하락한 91.7을 기록했다. 제조업 기업심리지수는 소폭 올랐지만, 체감 경기를 나타내는 ESI는 떨어졌다. 중동 전쟁 장기화로 하방 압력이 커지고 있다는 KDI의 진단과 맥이 닿는다.

 

더 구조적인 문제도 있다. 한국은행이 이달 발표한 이슈노트에 따르면 남성 청년층(25~34세) 경제활동참가율이 2000년 89.9%에서 2025년 82.3%로 25년간 7.6%포인트나 떨어졌다. 주요 선진국과 비교해도 두드러지게 큰 감소폭이다. 밀레니얼 남성의 노동시장 이탈이 30대 후반까지도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수출이 반도체 중심으로 살아나는 동안, 노동시장의 안쪽은 서서히 비어가고 있다.

 

성과는 났는데, 누구의 성과인가

 

삼성전자 1분기 실적은 AI 반도체 수요라는 외부 환경 덕이 크다. HBM4 수요가 폭증하고 D램 가격이 90~100% 뛰는 슈퍼사이클 안에서 나온 숫자다. 회사가 잘해서이기도 하지만, 시장이 그쪽으로 움직인 덕도 분명 있다.

 

노조 입장에서는 그 호황기에 자신들의 기여분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다는 논리다. 성과급 상한이 있으면 영업이익이 두 배, 세 배 뛰어도 직원이 받는 돈은 제자리라는 것이다. 회사 입장에서는 영구적인 제도 변경은 불황기에 고정 비용이 된다는 우려다. 둘 다 틀린 말이 아니다.

 

문제는 이 논쟁이 좁은 협상 테이블에서만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한국 수출의 20%를 담당하는 회사다. 이 회사 반도체 공장이 18일 멈추면 그 파장은 노사 양측을 넘어 협력업체, 공급망, 국가 신용도까지 번진다. 4월 ESI가 내려간 시점에, 5월 파업이 현실화되면 경기 심리에 주는 충격은 숫자 이상이다.

 

5월 21일까지 시간이 있다. 타결이 나올 수도 있다. 그러나 타결이 나오지 않을 경우, 57조 실적을 자랑하던 나라의 경제 뉴스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다.

유서진 기자 ysj2323@todayeconomi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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