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e코노믹 = 이혜진 기자 | 미국 뉴욕 맨해튼 서쪽 허드슨강변에 자리한 제이콥 재비츠 컨벤션 센터. 현지시간 4월 1일, 이곳에서 열린 '2026 뉴욕 국제 오토쇼' 개막 프레스데이 행사장에 긴장감이 흘렀다. 현대자동차 부스 메인 무대 위, 아직 베일에 싸인 차량 한 대. 조명이 꺼지고 음악이 고조되는 순간 천으로 덮인 실루엣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37인치 대형 머드 타이어에 각진 차체, 그리고 차명 '볼더(Boulder)'. 객석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바디 온 프레임, 미국 문화의 근간"…현대차의 선전포고
볼더는 현대차가 향후 출시할 차세대 중형 픽업트럭의 디자인 방향성을 제시하는 콘셉트카다. 볼더라는 이름은 미국의 아웃도어 성지로 꼽히는 콜로라도주의 도시 '볼더'에서 따왔다.
이날 무대에 오른 호세 무뇨스 현대차 대표이사 사장은 단호한 어조로 포문을 열었다. "바디 온 프레임 차량은 미국 문화의 근간입니다. 현대차는 중형 픽업트럭 시장에서 모든 역량을 쏟아 경쟁할 것입니다." 현대차가 포드 F-150과 시보레 실버라도, 도요타 타코마, 닛산 프론티어 등이 장악한 미국 픽업트럭 시장에 정면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무뇨스 사장은 이어 "현대차는 1986년 미국에 '엑셀'을 처음 선보인 이후 40년에 걸쳐 다양한 세그먼트에서 우수한 상품성을 갖춘 차량을 제공하며 미국 시장에 깊이 뿌리를 내렸다"고 강조했다. 미국 시장에서의 오랜 신뢰를 픽업트럭 도전의 발판으로 삼겠다는 자신감이 묻어났다.
랜디 파커 현대차 북미권역본부 CEO도 거들었다. "현대차는 지난해 미국에서 역대 최고 판매 실적을 기록했다"며 "올해도 6년 연속 소매 판매 기록 경신을 향해 순항 중"이라고 밝혔다.
한편 무뇨스 사장은 글로벌 전략도 공유했다. 2030년까지 하이브리드 차종을 18종으로 확대하고, 내년에는 주행거리 연장형 전기차(EREV)를 라인업에 추가한다는 계획이다.
"네 바퀴로 쓴 러브레터"…볼더의 디자인 언어
볼더는 현대차 미국 디자인센터(Hyundai Design North America)가 주도해 개발했다. 디자인 기반이 된 언어는 '아트 오브 스틸(Art of Steel)'—스틸 소재 특유의 강인함과 아름다움을 극대화하는 외장 철학이다.
이상엽 현대제네시스 글로벌 디자인 담당 부사장은 "볼더는 고객들이 오랫동안 바라온 역동적인 오프로드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네 바퀴로 쓴 러브레터'"라고 표현했다. 단순한 픽업트럭이 아닌, 오프로드 문화 자체를 향한 헌정이라는 의미다.
차량 외형은 넓은 차창과 직각 형태의 실루엣으로 강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사파리 차량에서 착안한 고정식 상부 이중창은 탑승자에게 탁 트인 시야와 풍부한 채광을 제공한다. 티타늄의 질감을 연상시키는 깊이감 있는 외장 마감, 낮은 프로파일의 루프랙과 루프레일 사이를 가로지르는 철제 격자 구조물이 오프로드 이미지를 완성하는 동시에 실질적인 적재 능력도 더한다.
성능 지향성도 뚜렷하다. 37인치 대형 머드 터레인 타이어는 험로 주행 성능을 상징하는 핵심 요소다. 접근각·이탈각·브레이크오버각을 넉넉히 확보해 경사로와 험로, 계곡과 수로에서도 원활한 주행이 가능하도록 설계됐다. 토잉 훅과 도어 손잡이 등 주요 외장 요소에 반사 소재를 적용해 야간 식별성도 높였다.
편의 기능도 꼼꼼하다. 양방향 힌지 구조 테일게이트, 전동식 하강 테일게이트 윈도우, 앞뒤 문이 반대 방향으로 열리는 코치 스타일 도어로 짐의 적재·하역이 편리하다. 실내에는 간단한 식사부터 야외 사무까지 가능한 접이식 트레이 테이블이 들어가고, 험로 주행 중에도 직관적으로 조작할 수 있도록 주요 기능은 물리 노브와 버튼으로 구현했다. 여기에 실시간 오프로드 가이던스 시스템이 개인 디지털 스포터(오프로드 주행 시 외부에서 운전을 보조하는 조력자)의 역할을 대신한다.
소아암 캠페인 28년, 누적 기부 3억 달러 돌파
볼더 공개만이 이날의 전부는 아니었다. 현대차는 1998년 미국 딜러들과 함께 설립한 소아암 퇴치 캠페인 '현대 호프 온 휠스(Hyundai Hope On Wheels)'의 28주년을 함께 알렸다.
미국 어린이 사망의 주요 원인인 소아암을 퇴치하기 위해 시작된 이 캠페인은 관련 병원과 연구기관을 꾸준히 지원해왔다. 28년간 누적 기부 금액은 올해 3억 달러를 넘어섰다. 현대차는 작년부터 캐나다·멕시코로 캠페인을 확장한 데 이어, 올해부터는 유럽과 인도까지 활동 범위를 넓힌다는 계획도 밝혔다.
손흥민 앞세운 월드컵 마케팅…로봇 '스팟'·'아틀라스'도 현장 투입
현대차는 오토쇼를 무대로 2026 북중미 FIFA 월드컵 캠페인 테마도 공개했다. 테마는 '미래는 지금 여기서부터(Next Starts Now)'. 무뇨스 사장은 "월드컵의 매 경기마다 새로운 재능, 에너지, 가능성을 목격하게 된다"며 "현대차도 바로 지금 고객과 팬들을 위한 미래를 공개할 준비가 됐다"고 말했다.
현대차는 1999년 FIFA와 처음 파트너십을 맺은 이후 27년째 공식 파트너사로 활동 중이며, 2030년 월드컵까지 모빌리티 부문 공식 후원사 지위를 유지한다. 올해 월드컵에는 역대 최대 규모인 승용차 1,000여 대와 버스 500여 대를 지원하고,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로봇 '스팟'과 '아틀라스'도 현장 곳곳에 등장시킬 계획이다.
캠페인의 얼굴은 손흥민 선수다. 현대차는 오토쇼 직전인 지난달 30일(한국시간) 손흥민 선수가 등장하는 티저 영상을 공개하며 협업을 알린 바 있다. 손흥민 선수는 "미래는 그것을 향해 도전하는 사람의 것"이라며 현대차의 캠페인 비전에 공감을 표했다. 그는 월드컵 기간 동안 현대차 브랜드 앰배서더로 활동하며 글로벌 캠페인을 이끈다.
현대차는 애틀랜타, 마이애미, 뉴저지, 로스앤젤레스 등 4개 월드컵 개최 도시에서 4월부터 유소년 축구 캠프를 운영하고, 전 세계 어린이를 대상으로 응원 그림 공모전을 열어 수상작을 월드컵 공식 팀 버스 디자인에 반영하는 글로벌 참여 프로그램 'Be There With Hyundai'도 전개한다.
4,400m² 전시장에 29대…아이오닉 카페에 레이싱 시뮬레이터까지
오토쇼 전시장 규모도 상당했다. 현대차는 4,412m²(약 1,334평)의 공간에 총 29대의 차량을 전시했다. 메인 구역의 볼더 콘셉트를 중심으로, EV·하이브리드 존에는 아이오닉 5·아이오닉 9 등 전기차와 싼타페·쏘나타·엘란트라 하이브리드 모델이 자리했다. XRT 존에는 투싼, 싼타페, 싼타크루즈, 팰리세이드, 아이오닉 5의 XRT 라인업이 나란히 섰고, 퍼포먼스 존에는 아이오닉 5 N·아이오닉 6 N·엘란트라 N·엘란트라 N TCR 레이스카 등 고성능 모델이 집결했다.
체험형 콘텐츠도 풍성했다. 그란 투리스모 기반의 레이싱 시뮬레이터로 아이오닉 5 N의 주행감을 직접 체험할 수 있었고, 가장 빠른 랩타임을 기록한 참가자에게는 경품이 주어지는 '현대 레이싱 챌린지'도 운영됐다. EV 라이드&드라이브 존에서는 아이오닉 5 N·아이오닉 6 N·아이오닉 9를 직접 몰아볼 수 있었다. FIFA 존에서는 월드컵 테마 차량 관람과 함께 승부차기 게임을 즐길 수 있었고, 아이오닉 9의 V2L(차량에서 외부로 전력 공급) 기능을 활용해 음료를 만드는 '아이오닉 카페'도 방문객의 발길을 끌었다.
현대차의 뉴욕 오토쇼 전시는 현지시간 4월 13일까지 계속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