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story] 투자 피로가 바꾼 통신사의 셈법…"얼마나 잘 쓰느냐"의 시대

  • 등록 2026.04.02 19:0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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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외 통신사, CAPEX 긴축 속 AI 데이터센터로 무게중심 이동…'유틸리티 기업' 전환 가속

투데이e코노믹 = 이혜진 기자 | 2019년, 한국은 세계 최초로 5G를 상용화했다. SKT·KT·LG유플러스 3사가 그해 쏟아부은 설비투자(CAPEX)만 9조5,900억원. 통신사들은 커버리지 경쟁에 사활을 걸었고, 시장은 기대감으로 들떴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난 지금,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3사 합산 CAPEX는 지난해 6조6,000억원대까지 줄었고, 올해 전망치도 7조5,990억원 수준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숫자가 말해주는 것은 하나다. 통신 산업의 투자 문법이 바뀌었다.

 

한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 흐름은 국내에 국한되지 않는다. Verizon, AT&T, Deutsche Telekom 등 글로벌 주요 통신사들도 마찬가지다. 5G 망 구축에 수년간 막대한 자본을 투입했지만, 소비자 요금 인상은 제한적이었고 기업용 5G 서비스 같은 새로운 수익원은 기대만큼 자라주지 않았다. 투자는 했는데, 그에 상응하는 과실이 돌아오지 않은 것이다.

 

통신사들이 내린 결론은 비슷했다. 더 많이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덜 쓰면서 같은 성능을 유지할 것인가. 전략의 중심이 '확장'에서 '효율'로 옮겨갔다.

 

국내 통신사의 현실: 영업이익은 늘었는데 투자는 줄었다

 

국내 통신 3사의 5G 관련 CAPEX는 2019년 상용화 이후 매년 줄어왔다. 3사 합산 설비투자는 2019년 9조5,950억원에서 2020년 8조2,762억원, 2021년 8조2,006억원, 2022년 8조1,410억원, 2023년 7조2,972억원으로 해마다 감소했다.

 

문제는 투자가 줄어드는 동안 수익성은 오히려 개선됐다는 점이다. 통신 3사의 합산 영업이익은 5G 상용화 당시인 2019년 2분기 7,596억원에서 2024년 2분기 1조2,855억원으로 69.2% 늘었다. 투자는 줄이고 이익은 늘리는 구조가 굳어진 것이다. 이를 두고 소비자와 정치권에서는 "그 과실이 왜 요금 인하로 이어지지 않느냐"는 불만이 터져 나왔고, 5G 품질에 대한 불신도 여전하다.

 

국내 통신사의 영업이익률은 글로벌 피어 대비 현저히 낮은 수준이지만, 정부의 요금 인하 압박 등 규제로 ARPU(인당 평균 매출액)가 하락하며 수익성이 악화됐다. 이런 상황에서 영업이익률 개선의 실마리는 매출 확대보다 비용 효율화에서 찾아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선택적 투자'와 네트워크 공유, 효율의 두 축

 

투자를 줄이는 방식도 달라졌다. 과거처럼 전국에 균일하게 기지국을 늘리는 대신, 트래픽이 집중되는 도시 지역이나 기업 고객이 밀집한 구역에 자원을 몰아주는 '선택적 투자'가 자리를 잡았다. 실제로 5G 상용화 이후 구축된 무선국의 45% 이상이 수도권에 집중됐으며, 인천 옹진군·경북 고령군·전남 고흥군 등 지방 기초지자체 일부는 5G 기지국이 한 자릿수에 불과해 사실상 서비스 이용이 어려운 실정이다.

 

농어촌 지역에서는 3사가 무선국을 공동으로 쓰는 '5G 농어촌 공동망' 사업도 진행 중이다. 네트워크 공유는 유럽에서도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흐름이다. 중복 투자를 줄이고 CAPEX 부담을 낮추는 동시에, 커버리지를 어느 정도 유지할 수 있는 현실적 대안이다.

 

기술 측면에서는 오픈랜(Open RAN)이 거론된다. 특정 장비 업체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장기적으로 비용 구조를 개선할 수 있다는 기대가 있지만, 아직 성능과 안정성에서 완전한 대체재로 자리 잡지는 못하고 있다.

 

통신에서 AI 인프라로…새로운 투자 명분

 

긴축만이 해법은 아니다. 통신사들은 줄어든 통신 투자의 공백을 AI 데이터센터로 메우고 있다. 그리고 이쪽에서만큼은 오히려 공격적이다.

 

3사 모두 AI 기업으로의 전환을 표방하며 B2C AI 에이전트 서비스 출시, 글로벌 빅테크 기업과의 제휴 등을 통해 AI 기반 사업 다각화를 추진 중이다. SK텔레콤은 2030년까지 AI 매출 비중을 전체의 35%로 끌어올릴 계획이며, KT는 2028년까지 19%, LG유플러스는 비통신 분야 매출 비중을 40%까지 확대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구체적인 인프라 투자도 속도를 내고 있다. SK텔레콤은 AWS와 7조원을 투입해 울산에 GPU 6만 장 규모의 AI 데이터센터를 구축 중이며, 오픈AI와는 서남권 전용 AIDC 구축 협약을 맺었다. KT는 삼성SDS 컨소시엄에 합류해 국가 AI 컴퓨팅 센터 사업에 참여하며 2030년까지 320MW 이상의 인프라를 확보할 계획이다. LG유플러스는 2027년 완공을 목표로 파주에 축구장 9개 규모의 초대형 데이터센터를 짓고 있다.

 

성과도 나오고 있다. 이통 3사의 3분기 AIDC 관련 합산 매출은 5,019억원으로 전년보다 27.3% 급증했다. SK텔레콤이 1,498억원, KT클라우드가 2,490억원, LG유플러스가 1,031억원을 각각 기록했다. 증권가에서는 올해 이통 3사의 AIDC 관련 매출이 연간 2조원대를 달성할 것으로 전망한다.

 

빅테크의 벽, 그리고 통신사만의 강점

 

다만 이 길이 순탄하지만은 않다. 클라우드 시장에서는 Amazon, Microsoft, Google이 이미 압도적인 지배력을 쥐고 있다. 통신사가 단순히 서버를 쌓는 것만으로는 차별화가 어렵다.

 

그래서 국내 통신사들이 택한 방향은 협력과 특화다. KT는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팔란티어 등 글로벌 빅테크와 손잡고 산업별 특화 AI 솔루션을 넓히고 있다. SKT는 앤트로픽에 일찌감치 투자해 지분을 확보했고, AWS와 함께 울산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통신망, 기지국, 수십 년간 쌓아온 데이터 인프라 운영 경험—이것이 빅테크와의 경쟁에서 통신사가 내세울 수 있는 고유한 무기다.

 

업계에서는 2026년을 통신 3사의 AI 사업 수익화 원년으로 보고 있다. 3사 모두 AI 에이전트 상용화와 B2B 중심의 AI 수익 확대를 전략 핵심으로 삼고 있다.

 

유틸리티를 향해 가는 통신 산업

 

통신 산업의 좌표는 조금씩, 그러나 분명히 이동하고 있다. 빠르게 성장하는 산업이 아니라, 안정성과 효율이 중심이 되는 인프라 사업—흔히 '유틸리티형 산업'이라 부르는 그곳으로.

 

5G 투자 성숙기를 맞아 통신 관련 투자는 줄이는 대신 AI 데이터센터에 자원을 집중하는 흐름은 올해도 이어질 전망이다. 투자 정체 속에 통신장비·통신공사업계는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우려도 나온다. 장비업계 한 관계자는 "5G 추가 주파수 공급과 노후 장비 교체 등 투자 수요를 만들어줘야 한다"며 통신 인프라 투자 위축에 대한 우려를 드러냈다.


앞으로 통신사의 경쟁력을 결정짓는 것은 망 구축 속도가 아닐 것이다. 제한된 자본으로 안정적인 현금 흐름을 만들어내면서, AI 인프라라는 새로운 무대에서 어떤 포지션을 차지하느냐가 핵심이 된다. 5G 이후의 시대는 더 많은 투자가 아니라, 더 정교한 투자 판단을 요구하고 있다.

이혜진 기자 00700hj@todayeconomi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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