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e코노믹 = 박재형 기자 | 글로벌 인공지능(AI) 산업의 패러다임이 '기술 개발'에서 '자본 확보'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초거대 AI 모델을 구동하기 위한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전력 인프라 구축에 천문학적인 자금이 투입되면서, 이제 AI는 단순한 소프트웨어 경쟁이 아닌 거대 장치 산업의 영역으로 변모하는 양상이다.
■ '지능'이 아닌 '물량'으로 결정되는 승부처
최근 빅테크 기업들의 투자 행보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설비 투자(CAPEX)'다. 과거 연구소 안의 알고리즘 고도화에 집중하던 시대를 지나, 이제는 누가 더 많은 GPU(그래픽처리장치)를 확보하고 거대한 데이터센터를 가동하느냐에 따라 시장 지배력이 결정되고 있다.
실제로 글로벌 시장조사 기관들은 향후 수년간 AI 관련 자본 지출이 가파른 우상향 곡선을 그릴 것으로 내다본다. 투자의 축은 크게 세 갈래다. 24시간 중단 없는 연산을 위한 ▲데이터센터 건설, 핵심 부품인 ▲AI 반도체 확보, 그리고 이를 수익화할 ▲기업용(B2B) 플랫폼 확장이다. 이 세 영역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있으며, 자본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후발 주자에게는 넘기 힘든 진입 장벽이 되고 있다.
■ 실물 경제 흔드는 AI 포식자들
AI 투자의 파괴력은 IT 업계를 넘어 에너지와 제조 현장까지 뻗치고 있다. 대규모 연산에 필수적인 전력 수요가 폭증하면서 데이터센터 인근의 전력 인프라 부족 사태가 현실화되는 등, AI 산업이 실물 경제의 수요 구조를 재편하는 모습이다.
수익 모델 역시 변화의 급물살을 타고 있다. 광고나 하드웨어 판매에 의존하던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기업 맞춤형 모델 제공이나 API 사용료 등 '구독형 서비스'가 핵심 수익원으로 부상하고 있다. 특히 기업용 시장은 마진율이 높고 고객 이탈이 적어 빅테크들이 사활을 걸고 선점하려는 전략지다.
■ 반도체 사이클, '기존 공식'이 안 통한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반도체 산업은 유례없는 변곡점을 맞이했다. 과거 PC나 스마트폰 수요에 따라 움직이던 정형화된 사이클은 힘을 잃었다. 현재 반도체 시장은 범용 제품의 재고 부담과 고성능 AI 칩의 공급 부족이 공존하는 '극단적 양극화' 상태다.
결국 이번 반도체 업황 회복의 성격은 과거와 전혀 다르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단순히 경기가 좋아져서 팔리는 것이 아니라, AI라는 거대 인프라 수요가 공급망 전체를 강제로 재배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술 수준과 포트폴리오 구성에 따라 기업 간 실적 격차가 벌어지는 '선별적 호황'이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 '소수 공룡' 중심의 시장 재편 가속화
전문가들은 중장기적으로 AI 산업이 막대한 고정비를 감당할 수 있는 소수의 초대형 기업 위주로 재편될 것으로 보고 있다. 과거 클라우드 시장 초기, 과감한 설비 투자로 시장을 장악한 기업들이 현재의 승자가 된 것과 같은 이치다.
반면 중소 기술 기업들은 범용 모델보다는 특정 산업에 특화된 응용 서비스나 틈새 영역에서 생존 전략을 짜야 하는 상황이다. 결국 앞으로의 AI 경쟁은 "누가 더 똑똑한 모델을 만드느냐"가 아니라, "누가 더 거대한 인프라를 버텨낼 자본을 가졌느냐"는 본질적인 물음으로 귀결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