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58년 무파업 신화 깨진 포스코, 120명이 멈춘 건 라인이 아니라 '시간'이다
투데이e코노믹 = 이혜진 기자 | 포스코 노동조합이 9일 오전 7시 부분파업에 들어갔다. 포항제철소 2전기강판공장의 3ZRM 라인과 광양제철소 산세공장, 두 곳이다. 참여 인원은 노조 집계로 120명 남짓, 회사 표현으로는 "전체 조합원의 1% 수준". 규모만 놓고 보면 뉴스가 되기 어려운 숫자다. 그런데도 이날 아침 철강업계 전체가 이 파업을 지켜봤다. 1968년 창사 이래 한 번도 없던 일이기 때문이다. 1%가 만든 상징 포스코는 오랫동안 '무분규 사업장'이라는 말로 설명되는 회사였다. 제철보국이라는 창업 정신, 국민기업이라는 자부심, 그리고 안정적인 임금과 복지가 그 배경으로 거론돼 왔다. 노조가 있어도 파업까지 가지 않는 문화, 그것이 58년을 지탱했다. 이번 파업이 그 문화를 뒤집었다고 말하기엔 아직 이르다. 48시간짜리 부분파업이고, 쇳물을 뽑는 고로 같은 핵심 공정은 협정근로 조항에 따라 정상 가동된다. 회사도 "실질적인 생산 차질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실제로 그럴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이 파업이 끝이 아니라 예고편이라는 점이다. 노조는 1차 파업이 끝난 뒤에도 교섭에 진전이 없으면 16일부터 120시간 2차 파업에 들어가겠다고 밝혔다. 대상 공장은 3배로 늘리고 참여 인원은 500명 이상으로 잡았다. 그 다음 단계로 10월 전면파업까지 검토 중이라는 말이 노조 쪽에서 나온다. 1%로 시작해 단계적으로 압박 수위를 올리는 전형적인 쟁의 전술이다. 회사가 이번 48시간을 어떻게 버티느냐보다, 다음 일주일을 어떻게 쓰느냐가 훨씬 중요해진 이유다. 7.1%와 2.0% 사이 교섭은 6월 16일 시작됐다. 여섯 차례 본교섭이 있었고, 7월 조합원 찬반투표에서 투표율 97.1%에 찬성 92.2%로 쟁의행위가 가결됐다. 8월 18일 중앙노동위원회가 조정 중지를 결정하면서 노조는 법적 쟁의권을 손에 쥐었다. 그러고도 3주를 더 기다렸다. 노조 스스로 "즉시 파업보다 추가 대화를 우선하겠다"고 했던 기간이다. 노조 요구안은 기본급 7.1% 인상, 격려금 600%, 우리사주 50주, 명절상여금 200%다. 회사가 마지막으로 내놓은 안은 기본급 2.0% 인상에 목표달성 격려금 350만 원, 지역사랑상품권 50만 원, 근속기념축하금 인상 범위 확대다. 중노위 조정 당시 1.5%였던 기본급 인상률을 2.0%로 올렸으니 회사도 움직이긴 했다. 다만 노조가 요구한 숫자와는 여전히 세 배 넘게 차이가 난다. 회사는 노조 요구안을 모두 받아들이면 약 1조4000억 원이 든다고 계산한다. 포스코 별도 기준 올해 상반기 영업이익이 4873억 원이다. 전년 같은 기간보다 43.3% 줄어든 수치다. 반년 동안 번 돈의 세 배 가까운 금액을 임금으로 얹어달라는 요구를 그대로 수용할 수 있는 경영진은 없다. 이 대목에서 회사 논리는 단단하다. 그런데 노조가 보는 숫자는 다르다. 노조는 철강 본업이 아니라 포스코홀딩스라는 지주회사 전체를 본다. 홀딩스의 2분기 연결 영업이익은 8190억 원이었고, 회사 스스로 "수익성 개선"이라고 발표했다. 리튬과 LNG, 인도네시아 팜 사업 등 자원 부문이 사상 최대 분기 이익을 냈고 이차전지소재도 흑자로 돌아섰다. 홀딩스의 배당성향은 2023년 41%에서 2025년 61%로 올라갔다. 주주에게 돌아가는 몫은 커지는데, 그 이익의 뿌리인 제철소 현장에는 "회사가 어렵다"는 말만 돌아온다는 것이 노조의 인식이다. 김성호 노조위원장이 "회사가 어렵다는 이유로 현장을 지켜온 조합원들은 항상 뒤로 미뤄지고 있다"고 말한 배경이 여기에 있다. 임금협상이지만 실은 이익 배분의 기준을 어디에 둘 것이냐를 놓고 벌이는 싸움이다. 철강 자회사의 손익계산서를 기준으로 삼을지, 지주사 연결 재무제표를 기준으로 삼을지. 2022년 지주사 체제 전환 이후 잠복해 있던 질문이 4년 만에 파업이라는 형태로 표면화된 셈이다. 임금 뒤에 쌓인 것들 돈 문제만이라면 58년 만의 파업까지 갔을까. 노조 안팎에서 나오는 이야기를 종합하면 이번 사태에는 몇 겹의 불만이 겹쳐 있다. 하나는 인력 부족과 장시간 노동이다. 주 52시간을 넘기는 근무가 현장에서 반복된다는 호소가 교섭 초기부터 나왔다. 구조조정과 인력 효율화가 진행되는 동안 남은 사람들의 부담이 커졌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지난 5월 불거진 협력사 직원 직고용 문제다. 포스코는 포항·광양제철소 협력사 소속 현장 인력 약 7000명을 직접 고용하겠다고 발표했다. 2011년부터 이어진 불법파견 소송을 정리하고 원·하청 구조를 개선하겠다는 취지였다. 방향 자체를 노조가 반대한 것은 아니다. 다만 기존 조합원과 아무런 사전 협의 없이 결정됐다는 점, 그리고 새로 들어올 7000명을 위한 복지시설이나 처우 체계가 준비되지 않았다는 점에 반발했다. 노조는 경영진의 공식 사과와 기존 조합원 보상 방안을 요구했다. 이 요구가 임금교섭과 얽히면서 감정의 골이 깊어졌다. 노조가 파업 전날인 8일 집회에서 "이제 공은 장인화 회장에게 넘어갔다"고 했던 것도 그런 맥락이다. 교섭 실무선에서 풀 수 있는 단계를 지났다는 판단, 그리고 최고경영자가 직접 나서서 현장의 자존심을 세워달라는 요구가 섞여 있다. 현대제철은 왜 달랐나 같은 철강업계, 같은 업황인데 현대제철은 8월 31일 임단협 잠정합의안을 마련하고 조합원 투표까지 마쳤다. 기본급 8만 원 인상, 성과급 300%, 일시금 500만 원, 온누리상품권 30만 원에 현 조합원의 정년까지 고용 안정을 보장하는 내용이다. 현대제철도 올여름 교섭 결렬과 중노위 조정 신청까지 갔던 회사다. "성과급 0원이 말이 되느냐"는 노조와 "적자 전환은 안 된다"는 회사가 맞섰지만, 두 달 만에 봉합됐다. 차이를 만든 건 회사의 재무 여력이라기보다 협상의 구조였다. 현대제철 노조는 금속노조 산하로 파업 경험이 축적돼 있고, 회사도 그에 맞춰 협상 카드를 준비해 온 역사가 있다. 서로가 어디까지 밀고 어디서 멈추는지를 안다. 반면 포스코는 노사 모두에게 이번이 첫 실전이다. 회사는 파업이 실제로 일어날 것이라는 전제 위에서 카드를 짜본 적이 없고, 노조 역시 파업으로 얻어낼 수 있는 것의 범위를 가늠해 본 경험이 없다. 양쪽 다 상대의 임계점을 모른 채 숫자를 던지고 있다. 이 파업이 남길 것 단기적으로 보면 이번 48시간이 자동차나 조선, 건설 같은 전방산업에 미칠 영향은 미미하다. 회사가 비상 대응체계를 가동하고 있고, 파업 대상 라인도 전기강판과 산세 공정으로 제한돼 있다. 시장이 포스코홀딩스 주가에 크게 반응하지 않은 것도 그런 판단 때문일 것이다. 길게 보면 다르다. 철강 업황은 좋아질 기미가 없다. 중국은 내수 침체로 남아도는 철강을 동남아와 한국으로 밀어내고 있고, 미국은 수입 철강에 50% 관세를 물린 채 문을 걸어 잠갔다. 유럽도 탄소국경조정제도로 장벽을 높이는 중이다. 포스코가 2분기에 철강 부문 이익을 소폭 늘린 것은 판매가격 인상과 물량 확대 덕분이었지, 시장이 살아나서가 아니다. 원료탄과 연료비는 오르고 있다. 포스코는 지금 이 세 겹의 압박 속에서 철강 본업의 수익성을 방어하면서 리튬과 수소, 이차전지소재로 사업 구조를 옮기는 중이다. 2028년까지 129건의 구조조정 과제를 마무리해 3조5000억 원의 현금을 확보하겠다는 계획도 내놨다. 이런 전환기에 회사는 현장 인력의 협조 없이 한 발짝도 움직이기 어렵다. 협력사 직고용 7000명을 포함하면 향후 몇 년간 포스코 현장은 조직 자체가 재편된다. 그 과정에서 노조와의 신뢰가 무너진 채로 간다면, 이번 임금협상에서 아낀 몇천억 원보다 훨씬 큰 비용을 치를 수 있다. 무파업 58년은 포스코가 가진 가장 오래된 자산 중 하나였다. 그 기록이 깨진 날, 회사가 생산 차질이 없다는 사실에만 안도한다면 상황을 잘못 읽은 것이다. 노조가 멈춘 것은 라인 두 개가 아니라, 회사가 그동안 당연하게 여겨왔던 시간이다. 2차 파업까지 남은 일주일 동안 회장이 어떤 답을 내놓느냐에 따라, 이번 파업은 하루짜리 해프닝으로 기억될 수도 있고 포스코 노사관계의 분기점으로 기록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