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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story] 43조 실탄 들고 나스닥 가는 SK하이닉스…'코리아 디스카운트' 지울까
투데이e코노믹 = 이혜진 기자 | SK하이닉스가 10일(현지시간) 미국 나스닥에서 미국주식예탁증서(ADR) 거래를 시작한다. 국내 시가총액 2위 기업이 뉴욕 무대에 직접 서는 것으로, 공모 규모만 40조원을 넘는 초대형 딜이다. 시장의 관심은 자금 조달 그 자체보다 이번 상장이 한국 반도체 기업의 만성적 저평가,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는 분기점이 될 수 있느냐에 쏠려 있다. 수요예측부터 '완판' 신호 흥행의 온도는 이미 확인됐다. 블룸버그와 로이터에 따르면 SK하이닉스 ADR 공모는 수요예측에서 계획된 물량의 '몇 배(multiple times)'에 달하는 초과 청약을 기록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6일 열린 투자설명회에는 기관투자자 약 1000곳이 몰렸고, 안정적 장기 성향의 대형 기관과 기술주 전문 투자자들의 수요가 초기부터 강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굵직한 이름들도 등장했다. 영국 자산운용사 베일리 기포드, 코튜매니지먼트, 그리고 오픈AI 출신 리오폴드 애션브레너가 설립한 시추에이셔널 어웨어니스 등 대형 투자사 3곳이 이번 공모에서 최대 70억 달러(약 10조7000억원) 규모의 매수 의향을 밝혔다. 화이트오크 캐피털의 노리 치우 투자 담당 이사는 "미국 투자자 입장에서 한국 주식, 특히 메모리 반도체 종목은 상대적으로 희소하고 접근하기 어려운 자산으로 남아 있다"며 이 같은 희소가치가 수요를 뒷받침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일정은 숨 가쁘게 돌아간다. 공모가는 뉴욕시간 기준 9일 오후 확정되며, 10일 나스닥 거래 개시, 14일 공모대금 납입, 15일 ADR 발행을 거쳐 29일 신주가 한국거래소에 추가 상장된다. 왜 나스닥인가…13년 묵은 '마이크론 격차' 이번 상장의 본질은 밸류에이션 전쟁이다. SK하이닉스는 향후 12개월 예상 실적 기준 주가수익비율(PER) 6.2배에 거래되고 있다. 같은 메모리 사업을 하는 미국 마이크론이 최근 조정에도 7배, 불과 보름 전까지 11배를 웃돌던 것과 대비된다. HSBC는 "지난 13년간 마이크론은 미국 투자자의 높은 접근성과 주주 친화 정책 덕분에 SK하이닉스보다 평균 35% 높은 밸류에이션을 받아왔다"며 미국 상장이 이 격차를 줄이는 핵심 촉매제가 될 것으로 봤다. HSBC는 나스닥 상장을 계기로 SK하이닉스에 기존 대비 20%의 프리미엄을 적용해 목표주가를 290만원에서 400만원으로 38% 상향했다. 수급 효과도 구체적이다. 미래에셋증권은 반에크 반도체(SMH), 아이셰어즈 반도체(SOXX) 등 주요 반도체 ETF에서 대규모 편입 수요가 발생하면서 ETF를 통해서만 약 15억 달러의 신규 자금이 유입될 것으로 추산했다. 상장 직후 나스닥 종합지수 편입을 시작으로 내년에는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 등 핵심 지수 편입 가능성도 거론된다. 운용자산 4820억 달러의 인베스코 QQQ 같은 초대형 패시브 펀드와 연기금, 즉 '체급이 다른' 글로벌 큰손들이 매수 주체로 들어올 수 있다는 얘기다. 하필 최악의 타이밍…변동성 속의 승부수 다만 절차가 진행된 시기는 공교롭다. 이번 공모는 최근 몇 년 새 가장 격렬한 수준의 글로벌 반도체주 변동성 속에 진행됐다. 지난 1일 메타플랫폼이 남는 AI 연산 자원을 임대하는 클라우드 사업 진출을 발표하면서 HBM 수요 둔화 우려가 촉발됐고, 필라델피아반도체지수는 이틀간 10% 넘게 밀렸다. SK하이닉스 주가도 이달 들어 17% 하락했으며, 8일에는 코스피가 5% 넘게 급락하는 '검은 수요일'까지 겹쳤다. 이 여파로 공모 몸집도 줄었다. SK하이닉스는 증권신고서 기준일을 변경하면서 참고 모집가액을 주당 255만5000원에서 242만5000원으로 낮췄고, 모집총액도 45조4534억원에서 43조1407억원으로 약 2조3000억원 축소했다. 지난달 말 290억 달러로 예상됐던 공모 규모가 280억 달러 안팎으로 줄어들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그럼에도 수배의 초과청약이 몰렸다는 것은, 로이터의 표현대로 시장 급락 속에서도 세계 최대 반도체 제조업체 중 하나에 대한 수요가 여전히 강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희석 우려 vs TSMC의 길 국내 주주 입장에서 셈법은 갈린다. 신주 1779만주(총 발행 주식의 약 2.5%) 발행에 따른 지분 희석과 수급 분산 우려가 제기되는 한편, 전문가들은 이를 동반 상승의 기회로 해석한다. 과거 뉴욕 증시에 상장한 대만 TSMC 사례처럼 미국 ADR에 프리미엄이 붙으면 상대적으로 싼 한국 본주를 매수하는 차익거래가 활발해지면서 국내 주가를 밀어 올리는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논리다. 실제 UBS는 "ADR을 사고 서울 주식은 팔라"는 투자 의견을 내놨는데, 이는 뒤집어 보면 ADR 프리미엄 형성을 기정사실화한 것이기도 하다. 변수는 ADR과 국내 주식 간 상호전환의 자유도다. 전환이 자유로우면 두 시장의 가격차는 제한되지만, 제약이 있다면 미국 ADR이 지속적으로 프리미엄을 받을 수 있다. 결국 내일 첫 거래의 의미는 SK하이닉스 한 종목을 넘어선다. 높은 공모가와 활발한 거래가 이어진다면 미국 투자자들이 메모리 슈퍼사이클의 지속성에 낙관적 판단을 내렸다는 신호가 되고, 이는 국내 반도체주 전반의 상승 여력으로 연결될 수 있다. 회사가 조달 자금을 AI 메모리 생산능력 확대에 투입하겠다고 밝힌 만큼, 이번 상장은 '반도체 정점론'과 '슈퍼사이클 지속론'이 맞붙는 시험대이기도 하다. 43조원짜리 승부수의 성적표는 이제 하루 뒤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