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e코노믹 = 박재형 기자 | 인공지능(AI) 확산으로 데이터센터 산업의 경제 구조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과거 데이터센터 경쟁이 서버 규모와 네트워크 속도 중심이었다면, 최근에는 전력 확보와 부지 접근성이 핵심 경쟁 요소로 떠오르고 있다.
AI 서비스는 기존 클라우드 서비스보다 훨씬 많은 연산 능력을 요구한다. 대형 AI 모델을 학습하고 운영하기 위해서는 수천 개의 GPU가 동시에 작동해야 하며, 이는 막대한 전력 소비로 이어진다. 전통적인 데이터센터가 10~25MW 수준의 전력을 소비한 반면, 하이퍼스케일 AI 데이터센터는 100MW가 넘는 전력을 요구한다. 이러한 이유로 데이터센터 산업에서는 전력 비용과 전력 공급 안정성이 중요한 전략 변수로 부상하고 있다.
대표적인 클라우드 기업인 Amazon, Microsoft, Google 등은 AI 인프라 확대를 위해 전 세계적으로 새로운 데이터센터를 구축하고 있다. 특히 AI 연산을 위한 GPU 수요가 급증하면서 고성능 반도체를 공급하는 NVIDIA의 영향력도 데이터센터 산업에서 크게 확대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마켓앤마켓스에 따르면, 2024년 전 세계 데이터센터 시장 규모는 약 1677억 달러였으나 2030년에는 9300억 달러 수준까지 증가할 전망으로, 연평균 성장률은 31.6%에 달한다.
데이터센터의 가장 큰 비용 항목 중 하나는 전력이다. 대형 AI 데이터센터 하나가 소비하는 전력은 중형 도시 수준에 이를 수 있으며, IEA는 2030년까지 전 세계 데이터센터의 연간 전력 소비가 현재 약 415TWh에서 945TWh로 두 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에 따라 기업들은 전력 비용이 낮고 재생에너지 확보가 쉬운 지역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냉각 기술 역시 중요한 요소로 떠오르고 있다. 일반 데이터센터가 서버랙당 평균 5~10kW의 전력을 소모하는 반면, AI 데이터센터는 서버랙당 최대 20~40kW 이상의 전력을 소비하는 고집적 GPU를 활용한다. 이에 따라 기존 공랭 방식뿐 아니라 액체 냉각(liquid cooling) 기술 도입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으며, 데이터센터 설계 방식 자체를 변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국내도 예외 없는 'AI 전력 전쟁'
한국도 이 흐름에서 자유롭지 않다. 한국데이터센터연합회에 따르면 국내 민간 데이터센터 시장 규모는 2024년 약 6조 2200억 원에서 2028년 약 10조 1900억 원으로 성장할 전망이다. 한국IDC는 국내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가 2025년 4,461MW에서 2028년 6,175MW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하며, 이는 연평균 약 11%의 성장률로 전체 산업 전력 수요 증가율을 크게 웃도는 수치다.
수요 급증과 함께 병목 현상도 심화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전력의 자료에 따르면, 2024년 8월부터 2025년 6월까지 약 11개월 동안 전국에서 290건의 데이터센터용 전력사용신청이 접수됐으며, 이 중 195건(67%)이 수도권에 집중됐다. 수도권 신청 용량만 약 20GW로, 1GW급 원전 20기 규모에 해당하는 전력 수요가 새롭게 발생한 셈이다.
정부가 도입한 분산 에너지 활성화 특별법(2024년 시행)으로 데이터센터 인허가 절차는 더욱 복잡해졌으며, 신규 데이터센터 건립에 필요한 행정 허가 기간은 통상 1~3년 수준이다. 이는 급증하는 수요를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는 구조적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기업들은 수도권 외 지역에서 전력 공급이 안정적인 부지를 선점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SK그룹은 울산 북신항에 SK가스가 보유한 LNG 터미널과 300MW급 열병합발전소를 기반으로 AI 데이터센터를 구축해 저렴하고 안정적인 전력을 확보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NHN 클라우드는 광주에 국가 AI 데이터센터를 운영 중으로, 88.5 페타플롭스(PF)의 연산 능력과 107 페타바이트(PB)의 저장 용량을 갖춘 AI 특화 인프라를 제공하고 있다.
데이터센터 산업에서는 부동산 가치도 새롭게 평가되고 있다. 전력망과 가까운 부지, 안정적인 통신 인프라를 갖춘 지역, 그리고 규제 환경이 우호적인 국가가 데이터센터 투자 유치 경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기존 통신 사업자와 서비스 사업자 중심이었던 시장 구조에 자산운용사, 건설사 등 신규 사업자의 진입이 활발해지면서 시장 참여자가 다변화되고 경쟁 구도가 재편되고 있다.
시장에서는 이러한 변화가 데이터센터 산업을 단순한 IT 인프라 사업에서 에너지·부동산·기술이 결합된 복합 산업으로 변화시키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일부 투자자들은 데이터센터를 새로운 형태의 인프라 자산으로 보고 장기 투자 대상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AI 산업이 성장할수록 데이터센터의 중요성은 더욱 커질 가능성이 높다. 결국 AI 경쟁의 핵심은 소프트웨어 알고리즘뿐 아니라 전력, 반도체, 데이터센터 인프라를 얼마나 확보할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는 점에서, 데이터센터 경제학은 앞으로 기술 산업의 핵심 변수로 자리 잡을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