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e코노믹 = 이혜진 기자 | LG에너지솔루션이 전기차(EV) 시장 둔화 속에서도 ESS(에너지저장장치)와 원통형 배터리를 축으로 한 사업 포트폴리오 전환을 통해 실적 반등과 중장기 성장 기반을 동시에 확보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29일 실적 발표를 통해 2025년 연결 기준 매출 23조6718억 원, 영업이익 1조3461억 원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전년 대비 매출은 7.6% 감소했지만, 영업이익은 133.9% 급증하며 수익성 회복에 성공했다.
EV 전방 수요 둔화와 글로벌 정책 불확실성으로 매출 규모는 줄었지만, 고수익 ESS 제품 확대와 북미 생산 인센티브 효과, 운영 효율화 전략이 맞물리며 이익 구조가 빠르게 개선됐다는 평가다.
특히 지난해 4분기 영업이익은 북미 생산 보조금(IRA 첨단제조세액공제) 3328억 원이 반영되며 실적 방어에 기여했다. 다만 이를 제외하면 4분기 영업손실은 4548억 원으로, EV 중심 사업 구조의 한계를 여전히 드러냈다.
이창실 LG에너지솔루션 CFO는 “EV 전동화 정책의 속도 조정과 글로벌 경기 둔화로 배터리 수요 환경이 전반적으로 위축됐지만, ESS와 고부가 제품 중심의 판매 전략으로 수익성을 대폭 개선했다”고 설명했다.
EV 둔화, ESS 급성장…사업 축 이동 본격화
LG에너지솔루션은 2026년 글로벌 배터리 시장의 핵심 키워드로 ‘밸류 시프트(Value Shift)’를 제시했다. EV 단일 성장 스토리에서 벗어나 ESS, 데이터센터, AI 인프라, 로봇 등 산업 전반으로 배터리 수요의 중심축이 이동하고 있다는 진단이다.
회사 측은 2026년 글로벌 ESS 설치량이 전년 대비 40% 이상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북미 시장은 AI 데이터센터 투자 확대, 전력망 안정화 정책, 재생에너지 연계 수요 증가로 ESS 비중이 전체 배터리 시장의 절반 수준까지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이에 맞춰 ESS 신규 수주 목표를 연간 90GWh 이상으로 설정했다. 이는 사상 최대 수준으로, 현재 확보한 ESS 누적 수주 잔고만 140GWh를 넘어섰다.
생산 전략도 전면 수정됐다. 기존 EV 위주로 설계됐던 폴란드 공장과 북미 JV 라인을 ESS 생산으로 전환하고, 미시간 홀랜드·랜싱 공장을 중심으로 북미 ESS 생산 거점을 빠르게 확대하고 있다. 올해 말 기준 글로벌 ESS 생산능력은 60GWh 이상으로, 전년 대비 약 2배 가까이 늘어날 전망이다.
원통형·로봇·46시리즈…‘포스트 EV’ 성장 동력 다변화
EV 시장에서는 제품 포트폴리오 다변화 전략이 핵심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고가 삼원계 중심 구조에서 벗어나 LFP, 미드니켈, LMR 등 다양한 화학 조성을 동시에 확대한다.
특히 LMR(리튬망간리치) 각형 배터리는 올해 상반기 오창 공장에서 샘플 생산을 시작하고, 2028년 양산을 목표로 개발 속도를 높이고 있다. LMR은 니켈 사용량을 줄이면서도 에너지 밀도를 유지할 수 있어, 차세대 중저가 전기차 시장을 겨냥한 전략 기술로 꼽힌다.
원통형 배터리 부문에서는 ‘46시리즈’가 차세대 성장축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이미 300GWh 이상의 수주 잔고를 확보했으며, 올해 말부터 미국 애리조나 신규 공장을 본격 가동해 북미 고객사 공급을 확대할 계획이다. 급속 충전 성능을 강화한 신형 모델도 연내 공개된다.
신사업 분야에서는 로봇 산업이 주목된다. 회사는 글로벌 로봇 선도 업체 6곳과 원통형 배터리 공급을 논의 중이며, 차세대 로봇 모델을 대상으로 스펙 협의와 양산 일정까지 구체화 단계에 진입했다. 이 밖에도 선박, 도심항공모빌리티(UAM), 우주항공 등으로 배터리 적용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투자 축소·자산 효율화…‘규모 성장’에서 ‘수익 중심’ 전환
재무 전략 역시 공격적 확장에서 선택과 집중으로 전환됐다. LG에너지솔루션은 올해 생산시설 투자 규모를 전년 대비 40% 이상 축소하고, 신규 공장 건설보다는 기존 자산 활용과 라인 전환을 통한 효율성 제고에 초점을 맞춘다.
Honda JV 건물 매각을 통해 차입금을 전액 상환하는 등 재무구조 개선 작업도 병행하고 있다. 이는 배터리 업계 전반이 겪고 있는 CAPEX 부담과 수익성 압박 속에서 ‘현금흐름 중심 경영’으로 방향을 선회했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LG에너지솔루션은 2026년 매출 성장률을 10% 중반~20% 수준으로 제시했다. EV 파우치형 매출 감소에도 불구하고 ESS와 소형 원통형 배터리 고성장을 통해 전체 외형 성장을 이어간다는 전략이다. 영업이익 규모 역시 전년 대비 확대를 목표로 설정했다.
김동명 LG에너지솔루션 CEO는 “배터리 산업은 EV 단일 시장을 넘어 ESS, AI 인프라, 로봇 등 다양한 산업으로 가치 중심이 이동하는 전환기에 들어섰다”며 “포트폴리오 리밸런싱과 운영 효율화를 통해 기회를 실질적 성과로 전환하는 데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시장에서는 LG에너지솔루션이 단순한 ‘EV 배터리 기업’에서 ‘에너지 인프라 플랫폼 기업’으로 체질 전환에 성공할 수 있을지가 향후 기업 가치 재평가의 핵심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ESS와 원통형 배터리가 실적 안정성을 확보할 경우, EV 변동성에 대한 구조적 디스카운트도 점차 완화될 수 있다는 평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