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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story] 반도체 사이클 전망④: 이란 전쟁 이후… 공급망 충격 vs AI 수요, '불확실성 확대'

투데이e코노믹 = 박재형 기자 | 2026년 2월 28일 미국·이스라엘의 합동 공습 '에픽 퓨리' 작전 개시 이후 이란과의 전면전이 현실화되면서, 메모리 슈퍼사이클 한복판에 있던 글로벌 반도체 산업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AI 수요라는 강력한 성장 엔진은 여전히 가동 중이지만, 에너지 가격 급등과 공급망 교란이라는 외부 충격이 겹치며 업황 전망이 한층 복잡해지고 있다.

 

호르무즈 봉쇄 → 에너지 가격 직격탄

 

가장 즉각적인 충격은 에너지 가격 상승이다. 전 세계 석유 액체 소비량의 5분의 1, 해상 석유 무역의 4분의 1 이상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데, 이란의 보복으로 이 항로가 사실상 봉쇄 상태에 놓이면서 에너지 비용이 수직 상승했다.

 

반도체 산업은 전력 의존도가 극히 높은 구조다. HBM 시장의 80%, D램 시장의 70%를 점유하고 있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와 엔비디아 칩을 독점 생산하는 TSMC 모두 막대한 전력을 사용하며, 이들이 사용하는 전력의 근간인 화석 연료 상당 부분을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특히 대만은 LNG 수요의 3분의 1 이상을 중동에서 들여온다. IDC(International Data Corporation)는 전쟁이 수개월 이어지는 시나리오에서 데이터센터 운영 에너지 비용 상승, 반도체 제조비 증가, 공급망 비용 확대 등이 맞물려 2026년 글로벌 IT 지출 증가율이 전쟁 이전 전망치 9.7%에서 8.8%로 낮아질 것으로 예상했다.

 

'헬륨 쇼크' — 공정의 심장을 겨누다

 

에너지보다 더 직접적인 위협은 반도체 핵심 소재인 헬륨이다. 헬륨은 반도체 냉각과 플라즈마 공정에 사실상 대체 불가능한 소재다. 이란의 공격으로 카타르 LNG 시설이 타격을 입으면서 헬륨 공급 차질 우려가 커지고 있으며, 카타르는 전 세계 헬륨 공급의 약 30% 이상을 차지하는 핵심 생산국이다. 호르무즈 봉쇄와 카타르 LNG 시설 피폭으로 헬륨 현물가는 1주일 새 50% 상승했으며, 공급 부족이 심화될 경우 최대 200%까지 급등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한국은 헬륨 수입량의 64.7%를 카타르에서 조달하고 있어 아시아 국가 중 가장 높은 의존도를 보이고 있으며, TSMC가 위치한 대만도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다. 반면 일본은 수입선의 절반을 미국에서, 30% 내외를 카타르에서 들여오는 공급망 다변화에 성공해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상황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전례 없는 사태가 아니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당시에도 반도체 공정용 희귀가스인 네온·크립톤·제논 공급량이 줄어들며 가격이 급등한 바 있다. 당시 네온 가격은 수개월 만에 수십 배 폭등했고, 이후 업계가 공급선 다변화에 나서는 계기가 됐다. 이번에는 그 역할을 헬륨이 맡고 있다.

 

물류 대란 — 웨이퍼가 묶였다

 

공급망 교란은 소재에 그치지 않는다. 세계 웨이퍼 운송의 30%를 담당하는 캐세이퍼시픽 항공 화물 부문은 지역 허브인 UAE 두바이 접근이 제한되면서 배송 지연을 겪고 있다. HBM을 비롯한 고부가 반도체 제품은 대부분 항공 운송에 의존하는데, 항공 운임이 유가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구조여서 이중의 비용 압박에 직면해 있다.

 

산업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수일에서 최대 3주 수준의 단기 공급 충격만으로도 전 산업 평균 생산비는 4.2%, 제조업은 5.4% 상승하고, 3개월 이상의 구조적 공급 충격 단계에서는 전 산업 9.4%, 제조업 11.8%까지 급등할 것으로 추정됐다.

 

방산·AI 군수 수요 — 반사이익도 존재

 

수요 측면에서는 상반된 흐름도 감지된다. 이번 전쟁에서는 AI가 실제 군사 작전에 처음으로 대규모 투입되면서 국방 반도체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이란 긴장이 고조되면서 AI 국방 기술 기업 팔란티어는 5.3% 주가 상승을 기록했고, 극음속 로켓·드론 제조사 KTOS도 회복세를 보였다.

 

국내에서도 한국 정부가 드론·AI 방산 스타트업 육성에 뭉칫돈을 투입하고 있으며, 중기부와 방위사업청은 2030년까지 방산 참여 스타트업 100개사 육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또한 비츠로셀 등 국내 배터리 업체가 드론·미사일용 특수 배터리를 미군에 납품하기 시작하는 등 방산 공급망 재편도 가속화되고 있다.

 

AI 인프라 투자 — 전쟁도 비켜가지 못했다

 

UAE의 AWS 데이터센터 두 곳과 바레인의 시설 한 곳이 이란의 드론 공격을 받아 가동이 일시 중단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빅테크들의 AI 인프라 투자가 지연될 경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주도하는 HBM 수요에 연쇄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다만 IDC는 "AI 수요가 관세나 지정학적 분쟁 등 외부 충격에도 지속된 것을 볼 때 AI 인프라 관련 공격적인 투자 계획은 전쟁이 3개월 정도 지속되는 한 유지될 것"이라고 밝혔다.

 

반도체 자립 가속화 — 블록화의 서막

 

이번 사태는 각국의 반도체 공급망 내재화 전략을 더욱 가속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은 CHIPS Act를 통해 자국 내 반도체 생산 기반을 강화해 왔으며, 중동 분쟁은 이 기조에 더욱 강한 동력을 제공하고 있다. TSMC의 미국 애리조나 팹, 삼성전자의 텍사스 테일러 팹 투자 모두 지정학 리스크 분산이라는 목적도 내포하고 있다. IDC 분석가는 "이번 충돌은 클라우드 산업에 상당한 변화를 의미한다.

 

주요 하이퍼스케일 리전이 처음으로 실제 분쟁 지역 안에서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기업이 지리적 리스크를 바라보는 방식이 달라지고 있다"며 "미션 크리티컬 워크로드는 멀티리전 배치가 기본 설계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전쟁 기간이 최대 변수

 

결국 이번 반도체 사이클은 수요는 분화되고, 공급은 불안정해지는 '고변동성 사이클'로 진입하고 있다. BCA 리서치의 마르코 파픽 수석 전략가는 "4월 중순까지 적대 행위가 종료되고 항로가 정상화되지 않으면 세계는 코로나19 이후 첫 공급망 붕괴와 경기 침체를 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반면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은 2026년 2분기 수출 전망에서, 15대 주요 수출 품목 중 12개 품목의 부진이 예상되는 가운데에서도 HBM·피지컬 AI 관련 수요 확대 등으로 반도체만은 호조세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했다.


업계에서는 "이란발 리스크는 반도체 산업에 직접적인 타격보다 에너지·소재·물류를 통해 간접적으로 침투하고 있다"며 "향후 반도체 사이클은 경기보다 지정학 변수에 더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는 구조로 재편되고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