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e코노믹 = 이혜진 기자 | 현대자동차그룹이 전기차 배터리를 차량과 분리해 구독하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실증에 나선다. 배터리 비용 부담을 낮추고 차량 수명 리스크를 줄이는 구조로, 전기차 보급 확대의 ‘걸림돌’로 지적돼온 가격 문제를 정면으로 겨냥했다.
현대차그룹은 28일 현대자동차와 현대캐피탈이 함께 올해 상반기 중 법인택시를 대상으로 ‘전기차 배터리 구독 서비스’ 실증사업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이번 사업은 국토교통부의 모빌리티 규제샌드박스를 통해 승인된 ‘차체-배터리 소유권 분리 등록’ 특례를 기반으로 진행된다.
배터리 따로 쓰는 전기차…구독 모델 실험
현행 제도에서는 전기차 배터리를 차량과 분리해 별도로 등록·관리할 수 없어, 소비자가 차량 구매 시 배터리까지 함께 부담해야 했다. 문제는 배터리다. 시간이 지날수록 성능이 저하되며, 교체 비용도 수천만 원에 달할 수 있어 중고차 가치 하락과 유지비 부담의 핵심 요인으로 꼽혀왔다.
현대차그룹은 이런 구조를 ‘구독형 모델’로 바꾸겠다는 전략이다. 차량은 소비자가 소유하되, 배터리는 금융사가 소유하고 월 구독료를 통해 사용하는 방식이다. 배터리 성능이 저하되면 교체 부담 없이 새로운 배터리를 공급받을 수 있어, 장기 운행 리스크를 크게 줄일 수 있다.
택시부터 검증…“고주행 환경에서 경제성 확인”
첫 실증 대상은 수도권 법인택시다. 현대 아이오닉 5 5대를 활용해 실제 영업 환경에서 배터리 구독 모델의 경제성과 운영 효율성을 점검한다.
택시는 일반 승용차 대비 주행거리가 훨씬 길어 배터리 열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대표적인 고사용 환경이다. 이 때문에 배터리 교체 수요가 조기에 발생하며, 운영 비용 부담도 크게 증가한다. 현대차그룹은 이러한 특성을 활용해 구독 모델이 실제로 비용 절감과 차량 운행 기간 연장에 얼마나 기여하는지를 집중적으로 검증할 계획이다.
실증에 참여하는 택시 사업자는 매월 구독료를 납부하고, 필요 시 배터리를 교체받는다. 교체된 배터리는 현대캐피탈이 회수·관리하며, 재사용 또는 에너지 저장장치(ESS) 등 2차 활용도 검토된다.
전기차 ‘구매 패턴’ 바뀌나…하반기 일반 소비자 확대
현대차그룹은 이번 실증을 시작으로 하반기에는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배터리 구독형 전기차 판매 모델도 시험할 계획이다. 차체와 배터리 소유권을 분리하는 구조가 제도적으로 정착될 경우, 전기차 구매 방식 자체가 ‘일시불 구매’에서 ‘서비스 이용’ 중심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업계에서는 이를 ‘EV版 리스·구독 경제’로 보고 있다. 초기 차량 가격을 낮추는 대신, 배터리 비용을 월 단위로 분산시키는 구조는 소비자 진입 장벽을 낮추는 동시에, 제조사와 금융사에는 장기 수익 모델을 제공한다.
특히 배터리 상태를 실시간으로 관리하는 데이터 기반 서비스와 결합될 경우, 차량 유지관리 영역에서도 새로운 비즈니스가 열릴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책·산업 맞물린 실험…전기차 확산 변수 될까
이번 실증은 정부의 전기차 보급 확대 정책과도 맞닿아 있다. 배터리 가격 부담은 전기차 대중화의 가장 큰 장애물 중 하나로 지적돼 왔는데, 소유권 분리 모델은 이를 해소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으로 평가된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배터리 소유권 분리가 실제 운행 환경에서 어떤 효과를 보이는지 확인하는 것이 이번 실증의 핵심”이라며 “향후 금융·구독 모델과 결합된 새로운 전기차 생태계를 구축해 소비자의 구매 및 운행 부담을 낮추고, 전기차 보급 확대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기차 시장이 ‘제품 경쟁’에서 ‘서비스 경쟁’으로 넘어가는 흐름 속에서, 이번 실증 결과가 향후 산업 구조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