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e코노믹 = 박재형 기자 | 농협은 늘 ‘농민을 위한 조직’을 자임해 왔다. 그러나 최근 농림축산식품부 특별감사 결과를 보면, 농협이 지켜온 것은 농민이 아니라 자기 조직과 간부들의 안위였다는 의심을 지우기 어렵다. 공금은 제 주머니처럼 쓰였고, 범죄 의혹은 ‘내부 문제’라는 이유로 덮였다. 농협이 더 이상 협동조합이라 부르기 어려운 이유다.
경영 위기를 이유로 ‘비상 경영 체계’를 선포했던 농협중앙회는 정작 내부에서는 농민의 돈을 아낌없이 풀어 썼다. 활동 내용조차 확인하지 않은 채 비상임 이사와 감사, 조합감사위원에게 매달 수백만 원의 수당을 지급했고, 심지어 이사회 현장에서 즉석 안건으로 1억5천만 원이 넘는 특별수당을 결정해 나눠 가졌다. 경영 위기 속에서 고통을 감내해야 할 주체는 농민이었지만, 혜택을 누린 것은 간부들이었다.
더 심각한 문제는 돈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의 태도다. 성추행과 업무상 배임이라는 중대한 범죄 혐의가 제기된 직원들에 대해 농협은 고발은커녕 형식적인 징계로 사건을 정리했다. 징계를 논의하는 인사위원회는 내부 인사들로만 채워졌고, 성폭력 사건에서 요구되는 최소한의 성별 구성 기준조차 지키지 않았다. 조직을 보호하기 위해 피해자와 법질서를 외면한 것이다.
이런 ‘봐주기 문화’는 우연이 아니다. 농협은 스스로를 감시해야 할 내부 통제 시스템을 사실상 무력화해 왔다. 감사기구는 존재하지만 기능하지 않았고, 인사는 폐쇄적으로 운영됐다. 특정 조합에 무이자 자금이 집중되고, 퇴직자 단체와 연계된 업체와의 수의계약이 반복되는 구조 속에서 공정성과 투명성은 설 자리가 없었다.
농협 경제지주가 수백억 원의 손실을 내고도 임원들에게 성과급을 지급한 사실은 이 조직의 현실 인식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손실은 공동체의 몫이고, 보상은 개인의 몫이라는 인식이 굳어져 있다면, 그 조직은 이미 공공성과 협동의 가치를 상실한 것이다.
외부 감사위원의 지적처럼 농협 문제의 뿌리는 선거 제도와 지배구조에 있다. “불법으로 돈을 써도 공소시효 6개월만 넘기면 된다”는 인식이 퍼진 선거에서 누가 정책과 비전을 말하겠는가. 돈이 드는 선거는 결국 비리를 낳고, 비리는 다시 자리를 나누는 구조로 이어진다. 이 악순환 속에서 농민은 철저히 배제된다.
농협은 정부의 관리·감독 사각지대에 있다는 이유로 오랫동안 ‘성역’처럼 취급돼 왔다. 그러나 이번 감사 결과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경고다. 농협 개혁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공소시효 특례를 폐지하고, 선거 제도를 근본적으로 손보며, 외부 통제와 투명성을 대폭 강화하지 않는다면 농협은 계속해서 농민의 신뢰를 소진할 뿐이다.
농민의 돈으로 권력을 만들고, 그 권력으로 다시 농민을 배제하는 구조. 이것이 지금의 농협이라면, 농협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조직인지 스스로 답해야 한다. 개혁이 없다면, 농협은 협동조합이 아니라 비리와 무책임의 집합체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